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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대한 독립 만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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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대한 독립 만세 ②

유관순 · 3·1 운동 ·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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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일본은 헌병과 경찰을 앞세워 칼 찬 교사가 교실에 서는 무단 통치를 폈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된 독립 선언서가 발표되고, 서울 탑골 공원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만세의 물결은 곧 전국의 도시와 장터로 번져 갔다.

등장인물

유관순이화학당 학생
1919년, 열여섯 살
유중권유관순의 아버지
마을에 학교를 세웠다
이소제유관순의 어머니
조인원지령리의 어른
아우내 만세를 이끌었다
어윤희서대문 감옥 8호실의 동료
개성 만세 운동

1919년 3월 31일 밤, 충청남도 천안 매봉산.

한 소녀가 산꼭대기에 올라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어둠 건너편 산마루에서, 불빛 하나가 대답했다.

또 하나, 또 하나 —

내일은 아우내 장날이었다.

이 소녀가 처음 만세를 부른 것은, 한 달 전 서울에서였다.

1919년 3월 1일 오후, 이화학당. 탑골 공원 쪽에서 만세 소리가 들려오자 학생들은 학교 뒷담을 넘어 거리로 달려 나갔다.

유관순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 · 열여섯 살
친구관순아, 같이 가자!

3월 5일 남대문 앞에서는 수천 명의 학생이 다시 만세를 불렀다. 유관순도 그 속에 있다가 붙잡혔다가, 학교의 힘으로 풀려났다.

3월 10일, 조선 총독부는 학교들에 문을 닫으라 명했다. 유관순은 고향 천안 지령리로 내려갔다.

서울에서 본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했다.

아버지 유중권은 마을에 학교를 세운 사람이었다. 숙부 유중무, 마을 어른 조인원 등이 밤마다 사랑방에 모였다.

유중권유관순의 아버지조인원지령리의 어른
조인원음력 3월 초하루,
아우내 장날에
만세를 부릅시다.

유관순은 어머니와 함께 밤을 새워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웃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장날 일을 알렸다.

이소제유관순의 어머니
이소제손 조심하거라.
밤이 깊었다.
유관순엄마, 이 태극기를
보면 다들 힘이 날 거예요.

1919년 4월 1일 (음력 3월 1일) 낮, 아우내 장터.

장꾼들 사이로 태극기가 하나둘 건네졌다. 모인 사람은 3천여 명.

조인원이 쌀가마 위에 올라 독립 선언서를 읽었다.

대한 독립 만세!

그때 일본 헌병들이 몰려왔다.

총소리가 장터를 갈랐다.

아버지 유중권은 헌병에게 왜 사람을 죽이느냐고 따지다가 총칼에 찔려 쓰러졌다. 그를 붙들던 어머니 이소제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관순아버지!
어머니!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19명이 숨졌다.

유관순은 그 자리에서 붙잡혀 천안 헌병 분대로 끌려갔다.

유관순내가 주동자다.
다른 사람들은
풀어 주어라.

공주의 법정은 무거운 징역형을 내렸고, 경성복심법원은 그해 6월 30일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유관순 (전하는 말)나는 대한 사람이다.
너희가 나를
재판할 권리는 없다!

서대문 감옥 여자 감방 8호실. 개성에서 만세를 부른 어윤희, 파주에서 만세를 이끌다 아이를 밴 채 붙잡힌 임명애, 앞을 보지 못하는 심명철 등이 함께 있었다.

어윤희8호실 동료
어윤희관순아, 몸이
그래서 어쩌려고…
유관순괜찮아요.
3월 1일이 오면
우리 다시 불러요.

1920년 3월 1일, 서대문 감옥.

만세 운동이 일어난 지 꼭 한 해 되는 날이었다.

유관순대한 독립 만세!

한 사람의 외침이 옆 감방으로, 또 그 옆으로 번졌다.

감옥 전체가 만세 소리로 흔들렸다.

간수들이 달려왔다. 유관순은 끌려 나가 모진 매질을 당했다.

그 뒤로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1920년 9월 28일 아침 8시,
유관순은 서대문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열일곱 살이었다. 생일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있었다.

이화학당의 선생님들이 일본 당국에 거듭 요구한 끝에 시신을 넘겨받았다. 10월 14일 정동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었다.

그 무덤은 뒷날 일제가 묘지를 없애면서 사라져,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스물다섯 해가 흘렀다.

1945년 8월 15일.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다시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가 그토록 부르던 만세였다.

유관순이 남겼다고 전하는 말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뿐인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1919년 그해 봄,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유관순’들이 전국의 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다.

제138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기미독립선언서 (1919)기미 독립 선언서 (1919년)

    기미 독립 선언서

    1919년 3월 1일 발표된 독립 선언서는 최남선이 글을 짓고 손병희 등 민족 대표 33인이 이름을 올렸어요. 천도교가 운영하던 보성사에서 2만 장 넘게 몰래 찍어 전국으로 나눴어요.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 사람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로 시작하고, 끝에 ‘공약 3장’을 붙였어요.

    독립기념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인공위성으로 본 아우내 장터 일대 (2019)인공위성으로 본 오늘의 아우내 장터 일대 (2019년)

    아우내 장터의 만세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천안 병천의 아우내 장날에 3천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어요. 조인원(조병옥의 아버지), 유중권·유중무 형제, 김구응 등이 이끌었고, 유관순은 미리 태극기를 만들어 나눠 주었어요. 일본 헌병의 발포와 총검으로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이 다쳤어요. 지금 그 자리에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이 있어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유관순 공훈록 · 『독립운동사』
  3. 유관순 수형기록표(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유관순 수형기록표 (일제 감시 대상 인물 카드)

    유관순 (1902~1920)

    1902년 12월 16일 천안 지령리에서 태어나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1919년 고등과 1학년이었어요. 3월 1일과 5일 서울의 만세 운동에 함께했고,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으로 내려가 아우내 만세를 준비했어요. 붙잡힌 뒤 공주지방법원에서 무거운 형(기록에 따라 5년 또는 7년)을, 1919년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어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유관순 공훈록 · 경성복심법원 판결문(1919년 6월 30일)
  4.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옥사와 태극기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옥사

    서대문 감옥 8호실

    유관순이 갇혔던 여자 감방 8호실에는 개성 만세를 이끈 어윤희·권애라·신관빈·심명철, 파주의 임명애, 수원 기생 만세의 김향화 등이 있었다고 해요. 1920년 3월 1일 3·1 운동 한 돌을 맞아 감옥 안에서 만세를 불렀고, 그 일로 유관순은 더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전해요. 2019년 심명철의 아들이 어머니에게 들었다며 공개한 노래에는 8호실 여성들이 함께 부른 가사가 담겨 있어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유관순 공훈록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5. 천안 유관순 열사 생가천안 병천의 유관순 열사 생가

    1920년 9월 28일, 그리고 사라진 무덤

    유관순은 1920년 9월 28일 아침 서대문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어요. 이화학당의 월터 선생 등이 시신을 넘겨 달라고 거듭 요구해 10월 12일 넘겨받았고, 14일 정동 교회에서 장례를 치른 뒤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었어요. 그러나 일제가 그 묘지를 군용지로 쓰려고 옮기는 과정에서 무덤이 없어져, 지금은 고향 매봉산 기슭에 혼을 모신 초혼묘가 있어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2019년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어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유관순 공훈록
  6. 뒷날 전해진 이야기들

    3월 31일 밤 유관순이 매봉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주변 산들이 이에 답했다는 이야기, 법정에서 ‘나는 대한 사람이니 너희가 나를 재판할 권리가 없다’며 맞섰다는 이야기는 해방 뒤 펴낸 전기와 증언으로 전해져요.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라는 마지막 말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가 남긴 말인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아요. 이 화에서는 이 이야기들을 ‘전하는 말’로 그렸고, 친구·어머니와 나눈 말과 8호실의 대화는 상상으로 지었어요.

    전영택 『유관순전』(1949) · 독립기념관

이번 화의 열쇠말

다음 화 예고 · 준비 중

제139화 · 민주 공화국을 선포하다

1919년 4월, 상하이의 한 셋집에 모인 사람들이 나라 이름을 정했다 — 대한민국. 그리고 첫 문장을 적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