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서울까지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쳐들어왔다. 서울은 사흘 만에 무너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적의 등 뒤인 인천으로 상륙하는 작전을 세웠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10m 가까이 되고 물길이 좁아, 바닷물이 가장 높이 차오르는 몇 시간 말고는 배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맥아더는 끝내 밀어붙였다. 작전 이름은 ‘크로마이트’, 날짜는 밀물이 가장 높은 9월 15일이었다.
등장인물
1950년, 일흔 살
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스물다섯 살
(지어낸 인물)
1950년 9월 15일 자정 무렵, 인천 앞바다 팔미도.
북한군이 지키던 등대에, 미 해군 클라크 대위와 한국인 대원들이 숨어들었다.
꺼져 있던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그 불빛 너머 어둠 속에, 260여 척의 배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군함과 수송선에 탄 군사는 7만여 명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석 달째 북한군 아래 놓인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정말 온대?
꼭 온다고 하셨어.
영호의 아버지는 6월 28일 한강 다리가 끊어지던 날, 피란길에서 헤어진 뒤 소식이 없었다.
새벽, 지휘함 마운트 매킨리호의 함교. 일흔 살의 맥아더가 쌍안경을 들었다.
월미도부터 친다.
6시 33분, 월미도 녹색 해안.
함포와 비행기가 섬을 두들기는 동안 상륙정들이 물살을 갈랐다.
미 해병 제5연대 3대대가 월미도에 올랐다.
상륙 20여 분 만에 언덕 꼭대기에 성조기가 올랐고, 두 시간이 안 되어 섬을 모두 차지했다.
희생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저녁이었다.
아침 밀물이 빠지자, 인천 앞바다는 끝없는 갯벌로 바뀌었다.
다음 밀물까지 열한 시간.
배들은 그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월미도의 해병들은 홀로 섬을 지켰고, 비행기들은 인천 시내로 이어지는 길을 막았다.
오후 5시 30분, 저녁 밀물을 타고 상륙정들이 다시 달렸다. 북쪽은 적색 해안, 남쪽은 청색 해안이었다.
적색 해안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돌 방파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해병들은 상륙정에서 사다리를 세워 방파제를 기어올랐다.
로페즈 중위가 소대를 이끌고 방파제를 넘었다.
적의 진지에 수류탄을 던지려던 순간, 총알이 그를 쓰러뜨렸다.
핀이 뽑힌 수류탄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로페즈는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덮었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해가 지고, 조명탄 아래 해병들은 언덕을 하나씩 차지해 나갔다.
밤이 되자, 탄약과 장비를 실은 상륙함 여덟 척이 적색 해안 갯벌에 그대로 올라앉았다.
국군 해병대도 뒤따라 인천에 올라, 시내 곳곳의 적을 몰아냈다.
9월 17~18일, 해병들은 김포 비행장을 되찾았다. 20일에는 행주 나루에서 수륙 양용 장갑차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서울로 가는 길은 연희동의 높은 언덕들이 막고 있었다.
9월 22일부터 사흘, 연희 고지에서 미 해병과 국군 해병은 북한군과 언덕 하나를 두고 몇 번이고 뺏고 빼앗겼다.
포성이 서울 하늘을 울렸다. 영호는 다락방 창틈으로 불타는 마포 쪽 하늘을 보았다.
우리 편이지?
9월 25일부터, 서울 시내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북한군은 거리마다 쌀가마와 흙더미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해병들은 전차를 앞세워 바리케이드를 하나씩 부수며 나아갔다.
서울이 불탔다.
9월 27일 새벽, 국군 해병대 박정모 소위의 소대가 중앙청 꼭대기로 올라갔다.
인공기가 내려지고 —
중앙청에 태극기가 올랐다.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석 달 만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 무너진 거리로 나와, 어디선가 꺼낸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날 서울 곳곳에서, 헤어졌던 가족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9월 29일 정오, 중앙청.
포탄에 부서진 지붕 아래, 맥아더와 이승만 대통령이 마주 섰다.
맥아더유엔군 사령부를 대신하여, 대통령 각하께 정부의 자리를 돌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맥아더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깨진 천장의 유리 조각들이 반짝이며 떨어져 내렸다.
이승만우리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우리 겨레를 구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서울은 다시,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었다.
인천 상륙에서 서울 수복까지 보름 남짓. 그 사이 미군과 국군 수천 명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고, 불탄 서울에서는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0월,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압록강까지 — 그리고 그 너머에서, 또 다른 군대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