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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인천에서 서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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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인천에서 서울까지

맥아더 ③ ·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수복 ·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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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쳐들어왔다. 서울은 사흘 만에 무너졌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유엔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적의 등 뒤인 인천으로 상륙하는 작전을 세웠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10m 가까이 되고 물길이 좁아, 바닷물이 가장 높이 차오르는 몇 시간 말고는 배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맥아더는 끝내 밀어붙였다. 작전 이름은 ‘크로마이트’, 날짜는 밀물이 가장 높은 9월 15일이었다.

등장인물

맥아더유엔군 사령관
1950년, 일흔 살
이승만대한민국 대통령
박정모국군 해병대 소위
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로페즈미 해병대 중위
스물다섯 살
영호서울에 남은 열두 살 소년
(지어낸 인물)

1950년 9월 15일 자정 무렵, 인천 앞바다 팔미도.

북한군이 지키던 등대에, 미 해군 클라크 대위와 한국인 대원들이 숨어들었다.

꺼져 있던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그 불빛 너머 어둠 속에, 260여 척의 배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군함과 수송선에 탄 군사는 7만여 명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석 달째 북한군 아래 놓인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영호서울에 남은 열두 살 소년
영호엄마, 미군이
정말 온대?
영호 엄마쉿… 아버지가
꼭 온다고 하셨어.

영호의 아버지는 6월 28일 한강 다리가 끊어지던 날, 피란길에서 헤어진 뒤 소식이 없었다.

새벽, 지휘함 마운트 매킨리호의 함교. 일흔 살의 맥아더가 쌍안경을 들었다.

맥아더유엔군 사령관
맥아더밀물이 온다.
월미도부터 친다.

6시 33분, 월미도 녹색 해안.

함포와 비행기가 섬을 두들기는 동안 상륙정들이 물살을 갈랐다.

미 해병 제5연대 3대대가 월미도에 올랐다.

미 해병 소대장앞으로! 해안에서 멈추지 마라!

상륙 20여 분 만에 언덕 꼭대기에 성조기가 올랐고, 두 시간이 안 되어 섬을 모두 차지했다.

희생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저녁이었다.

아침 밀물이 빠지자, 인천 앞바다는 끝없는 갯벌로 바뀌었다.

다음 밀물까지 열한 시간.
배들은 그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월미도의 해병들은 홀로 섬을 지켰고, 비행기들은 인천 시내로 이어지는 길을 막았다.

오후 5시 30분, 저녁 밀물을 타고 상륙정들이 다시 달렸다. 북쪽은 적색 해안, 남쪽은 청색 해안이었다.

적색 해안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돌 방파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로페즈 중위사다리를 걸어라!

해병들은 상륙정에서 사다리를 세워 방파제를 기어올랐다.

로페즈 중위가 소대를 이끌고 방파제를 넘었다.

적의 진지에 수류탄을 던지려던 순간, 총알이 그를 쓰러뜨렸다.

핀이 뽑힌 수류탄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로페즈는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덮었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해가 지고, 조명탄 아래 해병들은 언덕을 하나씩 차지해 나갔다.

밤이 되자, 탄약과 장비를 실은 상륙함 여덟 척이 적색 해안 갯벌에 그대로 올라앉았다.

국군 해병대도 뒤따라 인천에 올라, 시내 곳곳의 적을 몰아냈다.

9월 17~18일, 해병들은 김포 비행장을 되찾았다. 20일에는 행주 나루에서 수륙 양용 장갑차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서울로 가는 길은 연희동의 높은 언덕들이 막고 있었다.

9월 22일부터 사흘, 연희 고지에서 미 해병과 국군 해병은 북한군과 언덕 하나를 두고 몇 번이고 뺏고 빼앗겼다.

포성이 서울 하늘을 울렸다. 영호는 다락방 창틈으로 불타는 마포 쪽 하늘을 보았다.

영호엄마, 저 소리…
우리 편이지?

9월 25일부터, 서울 시내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북한군은 거리마다 쌀가마와 흙더미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해병들은 전차를 앞세워 바리케이드를 하나씩 부수며 나아갔다.

서울이 불탔다.

9월 27일 새벽, 국군 해병대 박정모 소위의 소대가 중앙청 꼭대기로 올라갔다.

인공기가 내려지고 —

중앙청에 태극기가 올랐다.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석 달 만이었다.

서울 사람들만세!
대한민국 만세!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 무너진 거리로 나와, 어디선가 꺼낸 태극기를 흔들었다.

영호 아버지영호야!
영호아버지!

그날 서울 곳곳에서, 헤어졌던 가족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9월 29일 정오, 중앙청.

포탄에 부서진 지붕 아래, 맥아더와 이승만 대통령이 마주 섰다.

맥아더유엔군 사령부를 대신하여, 대통령 각하께 정부의 자리를 돌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맥아더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깨진 천장의 유리 조각들이 반짝이며 떨어져 내렸다.

이승만우리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우리 겨레를 구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서울은 다시,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었다.

인천 상륙에서 서울 수복까지 보름 남짓. 그 사이 미군과 국군 수천 명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고, 불탄 서울에서는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0월,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압록강까지 — 그리고 그 너머에서, 또 다른 군대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

제155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마운트매킨리호에서 인천 포격을 지켜보는 맥아더 (1950년 9월 15일)마운트매킨리호에서 인천 포격을 지켜보는 맥아더(가운데, 1950년 9월 15일)

    크로마이트 작전

    인천 상륙 작전의 이름은 ‘크로마이트(Chromite)’예요. 미 제10군단(미 제1해병사단·제7보병사단)과 국군 해병대·제17연대 등 7만여 명이 260여 척의 배를 타고 참가했어요. 인천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10m 가까이 되고 물길이 좁아 상륙하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그래서 적이 예상하지 못한 곳이기도 했어요. 9월 15일 아침 6시 33분 월미도(녹색 해안), 저녁 밀물 때인 5시 30분 무렵 인천 시내 북쪽의 적색 해안과 남쪽의 청색 해안에 차례로 올랐어요.

    미 해병대 공간사 『The Inchon-Seoul Operation』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2. 인천 레드 비치에 올라앉아 짐을 부리는 LST들 (1950년 9월)적색 해안에 올라앉아 짐을 부리는 상륙함들 (1950년 9월)

    갯벌에 올라앉은 상륙함

    9월 15일 저녁, 탄약과 차량·장비를 가득 실은 상륙함(LST) 여덟 척이 적색 해안에 그대로 올라앉았어요. 밀물이 빠지면 꼼짝없이 갯벌에 갇히는, 적의 포탄 한 발에도 위험한 배들이었지만, 밤새 짐을 부려 이튿날 해병들이 서울로 나아갈 수 있게 했어요. 썰물 때 인천 앞바다는 수 킬로미터의 갯벌이 드러나, 배들은 밀물이 들어오는 몇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어요.

    미 해병대 공간사 『The Inchon-Seoul Operation』
  3. 팔미도 등대

    팔미도 등대는 1903년 처음 불을 밝힌 우리나라 첫 근대식 등대예요. 상륙 작전을 앞두고 미 해군 유진 클라크 대위가 이끈 첩보 팀과 켈로 부대(KLO) 등 한국인 대원들이 팔미도를 되찾아, 9월 15일 자정 무렵 등대에 불을 밝혀 함대가 좁은 물길로 들어오게 했다고 전해요. 누가 어떤 몫을 했는지는 기록과 증언마다 조금씩 달라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 인천광역시
  4. 사다리로 레드 비치 방파제를 넘는 미 해병대 (1950년 9월 15일)사다리로 적색 해안의 방파제를 넘는 미 해병들 — 맨 위가 로페즈 중위 (1950년 9월 15일)

    로페즈 중위

    미 해병 제5연대 1대대 A중대의 소대장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는 적색 해안의 방파제를 사다리로 넘는 모습이 사진에 찍힌 지 몇 분 뒤, 적의 진지에 수류탄을 던지려다 어깨에 총을 맞아 수류탄을 떨어뜨리자 소대원들을 지키려고 그 위에 몸을 던졌어요. 미국 최고 무공 훈장인 명예 훈장을 받았어요.

    미 해병대 공간사 『The Inchon-Seoul Operation』
  5. 서울 미국 영사관에 성조기를 올리는 미 해병 (1950년 9월 27일)같은 날 서울 미국 영사관 지붕에 성조기를 올리는 미 해병 (1950년 9월 27일)

    중앙청의 태극기

    9월 27일 새벽, 국군 해병대 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박정모 소위와 소대원들이 서울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 꼭대기에 올라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걸었어요. 그 이튿날인 9월 28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완전히 되찾았어요. 이날을 ‘9·28 서울 수복’이라 해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6. 중앙청에서 열린 서울 환도식 (1950년 9월 29일)1950년 9월 29일 중앙청 환도식 — 주기도문을 이끄는 맥아더

    9월 29일의 환도식

    9월 29일 정오, 부서진 중앙청 홀에서 맥아더는 ‘유엔군 사령부를 대신하여 정부의 자리를 돌려드린다’며 서울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넘겨주었어요. 맥아더가 주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포격으로 깨진 둥근 지붕의 유리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고 그의 회고록은 적었고, 이승만은 ‘우리 겨레의 구원자로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답했어요. 맥아더의 이야기는 제157화 「노병은 사라질 뿐」으로 이어져요.

    『맥아더 회고록』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7.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야외 전시장인천상륙작전기념관 야외 전시장

    상상으로 그린 것

    서울 마포에 숨어 지내던 소년 영호와 그 가족은 지어낸 인물이에요. 그러나 석 달 동안 서울에 남았던 많은 시민이 북한군의 강제 징집과 체포, 굶주림 속에 지냈고, 서울 수복 뒤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난 일은 수없이 많았어요. 월미도에서 소대장이 외친 말, 맥아더가 함교에서 한 말은 상상으로 다듬었고, 환도식의 두 사람의 말은 기록을 줄여 옮겼어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이번 화의 열쇠말

다음 화 예고 · 준비 중

제156화 · 흥남의 크리스마스

압록강까지 올라간 북진, 그리고 겨울과 함께 나타난 중공군. 1950년 12월 흥남 부두에서는 피란민 1만 4천 명을 태운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떠난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