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제55화왕건, 고려를 열다
KO
제55화

왕건, 고려를 열다

고려 건국 · 918년
아래로 스크롤 ↓
🎧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9세기 말 신라는 흔들리고 있었다. 왕실은 다툼에 빠지고, 세금에 시달린 농민들이 곳곳에서 들고일어났다. 900년 견훤은 완산주(지금의 전주)에서 ‘후백제’를, 901년 신라 왕족 출신이라는 승려 궁예는 송악에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다시 셋으로 나뉜 땅 — 후삼국 시대였다. 송악의 바닷가에는 바다를 오가며 장사로 큰 힘을 기른 집안이 있었다. 왕건의 집안이었다.

등장인물

왕건송악 호족의 아들 · 궁예의 장군
918년, 마흔두 살
궁예후고구려(태봉)의 왕
스스로 미륵이라 했다
류씨 부인정주 유천궁의 딸
왕건의 부인
신숭겸궁예의 장수
왕건을 왕으로 세우려 한다
홍유궁예의 장수
최응궁예의 서기(장주)

918년 6월, 태봉의 도읍 철원. 한밤중에 횃불을 든 사람들이 궁궐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 맨 앞에, 마흔두 살의 장군 왕건이 있었다.

이야기는 스물두 해 전, 바닷가 고을 송악에서 시작된다.

송악의 호족 왕륭은 바다를 오가는 무역으로 큰 부를 쌓은 집안의 주인이었다.

왕륭 (왕건의 아버지)철원의 궁예에게
송악을 바치겠습니다.
제 아들을 성주로
삼아 주십시오.
왕건왕륭의 아들 · 스무 살

896년, 왕륭은 궁예에게 몸을 맡겼다. 스무 살 왕건은 궁예의 장수가 되었다.

왕건은 바다를 잘 알았다. 903년, 그는 배를 이끌고 서해를 따라 내려가 후백제의 뒤쪽 금성(지금의 나주)을 빼앗았다.

견훤의 땅 한가운데에 궁예의 깃발이 섰다.

어느 해 싸움길에, 왕건은 정주(지금의 개풍)의 늙은 버드나무 아래에서 말을 쉬게 했다. 냇가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왕건뉘 집 따님이시오?
류씨이 고을 장자의
딸이옵니다.
류씨정주 유천궁의 딸

왕건은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싸움터로 떠났다. 그 뒤로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

여인은 다른 곳으로 시집가지 않으려고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기다렸다. 『고려사』는 그렇게 적었다.

소식을 들은 왕건은 그를 찾아와 부인으로 맞았다.

왕건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궁예는 905년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고, 911년 나라 이름을 ‘태봉’이라 했다.

궁예태봉의 왕
궁예나는 미륵이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스스로 미륵불이라 하며 금빛 고깔을 쓰고, 두 아들을 보살이라 불렀다. ‘관심법’으로 마음을 읽는다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

915년, 왕비 강씨가 왕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자 궁예는 그를 죽이고, 두 아들까지 죽였다.

어느 날 궁예가 왕건을 불러 세웠다.

궁예경이 어젯밤 사람들을 모아 반역을 꾀했다던데, 어찌 된 일인가?

왕건…그런 일이 없사옵니다.

궁예속이지 마라. 나는 마음을 꿰뚫어 본다!

그때 곁에 있던 서기 최응이, 일부러 붓을 떨어뜨렸다.

최응 (붓을 주우며 속삭였다)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왕건은 ‘신이 반역을 꾀하였사오니 죽어 마땅합니다’ 하고 엎드렸다.

궁예는 크게 웃으며 그를 용서했다.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918년 6월 어느 밤,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네 장군이 몰래 왕건의 집을 찾아왔다.

신숭겸궁예의 장수홍유궁예의 장수
홍유지금 임금은 형벌을 함부로 하여
아내와 자식까지 죽였습니다.
공께서 일어나 주십시오!
왕건나는 충의로 스스로를
지켜 왔소. 임금이 비록 포악하나,
어찌 두 마음을 품겠소.
신숭겸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습니다!

그때, 장막 뒤에서 부인 류씨가 걸어 나왔다.

류씨 부인의로운 이를 들어 포악한 임금을 바꾸는 것은 옛날부터 있어 온 일입니다.

류씨 부인장군들의 말을 들으니 아녀자인 저도 분이 치미는데, 하물며 대장부께서야.

부인은 손수 갑옷을 들어, 남편에게 입혔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만난 지 여러 해. 그 밤, 왕건은 칼을 찼다.

장군들이 왕건을 둘러싸고 문을 나서며 외쳤다.

장수들왕공께서 의로운 깃발을 드셨다!

궁궐 문 앞에는 먼저 와서 북을 치며 기다리는 사람이 1만 명이 넘었다.

궁예는 옷을 바꿔 입고 몰래 성을 빠져나갔다.

산속을 헤매던 그는 굶주려 보리 이삭을 훔쳐 먹다가, 부양 백성들의 손에 죽었다.

918년 6월 15일, 철원 포정전.

왕건은 왕위에 올랐다.

나라 이름은 ‘고려’.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이었다.

연호는 ‘천수’ — 하늘이 내려 준 것이라 했다.

왕은 백성에게 거두는 것을 줄이라 명했다. 궁예 때 무겁던 세금을 수확의 10분의 1로 되돌렸다.

이듬해 919년, 왕은 도읍을 고향 송악으로 옮겼다. 바다로 나가는 강 어귀의 도시, 개경이었다.

곁에는 정주의 버드나무 아래에서 만난 부인, 신혜왕후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땅은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남쪽에는 견훤의 후백제가, 동쪽에는 기울어 가는 신라가 있었다.

고려가 이 땅을 다시 하나로 묶기까지,
아직 열여덟 해가 더 남아 있었다.

제55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오늘날의 개성(옛 송악) 시가지 (2018)오늘날의 개성(옛 송악) 시가지 (2018년)

    송악의 바다 상인 집안

    왕건의 집안은 송악(지금의 개성)을 근거로, 예성강 어귀에서 바다를 오가는 무역으로 힘을 기른 호족이었어요. 『고려사』 첫머리 「고려세계」에는 할아버지 작제건이 당나라로 가는 상선을 탔다가 서해 용왕의 딸과 혼인했다는 전설도 실려 있어요. 896년 아버지 왕륭은 궁예에게 송악을 바치며 ‘먼저 송악에 성을 쌓고 제 맏아들을 성주로 삼으소서’라고 했대요.

    『고려사』 고려세계 · 태조 세가
  2. 버드나무 아래의 인연

    『고려사』 후비전은 신혜왕후 류씨가 정주(지금의 개성 개풍) 사람 유천궁의 딸이라고 전해요. 궁예의 장군이던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정주를 지나다 늙은 버드나무 아래서 쉬는데, 냇가에 선 여인을 보고 누구냐 물었고, 그날 그 집에 묵었대요. 그 뒤 소식이 끊기자 여인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고, 이를 들은 왕건이 불러 부인으로 삼았다고 해요.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어요.

    『고려사』 후비전 신혜왕후
  3. ‘관심법’과 떨어진 붓

    『고려사』 태조 세가에 따르면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하고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을 쓴다며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 어느 날 왕건을 불러 반역을 꾀했다고 다그치자, 곁에서 글을 쓰던 장주 최응이 일부러 붓을 떨어뜨리고 줍는 척하며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귀띔했고, 왕건이 거짓으로 죄를 인정하자 궁예는 웃으며 정직하다고 용서했대요. 915년에는 왕비 강씨와 두 아들도 죽였다고 『삼국사기』 궁예 열전은 적었어요.

    『고려사』 태조 세가 · 『삼국사기』 궁예 열전
  4. 918년 6월의 밤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이 밤에 찾아와 왕건에게 왕이 되기를 청했고, 왕건은 ‘충의로 스스로를 지켜 왔으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다’며 거절했어요. 이때 장막 안에 있던 부인 류씨가 나와 ‘의를 들어 포악한 이를 바꾸는 것은 예부터 있던 일’이라며 손수 갑옷을 입혔다고 『고려사』는 적었어요. 궁궐 문에 이르니 먼저 와서 북을 치며 기다리는 사람이 1만여 명이었고, 궁예는 몰래 달아났다가 부양(지금의 강원도 평강) 백성에게 죽었다고 해요.

    『고려사』 태조 세가 · 홍유 열전
  5. 개성 만월대 터의 돌계단개성 만월대 터 · 송악산 기슭의 고려 궁궐 자리

    고려와 천수

    왕건은 918년 6월 병진일(15일) 철원의 포정전에서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고려, 연호를 천수라 했어요. ‘고려’는 고구려가 스스로를 부르던 이름이기도 해요. 왕은 궁예 때 무거웠던 세금을 줄여 수확의 10분의 1만 거두게 했고(취민유도), 이듬해 919년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어요. 그 뒤 각지의 호족들과 혼인으로 손을 잡아 왕비와 부인이 29명에 이르렀어요.

    『고려사』 태조 세가
  6. 개성 왕건릉(현릉)을 지키는 무인석개성 현릉(왕건릉)을 지키는 무인석

    왕건의 무덤과 청동상

    왕건은 943년 세상을 떠나 개성의 현릉에 묻혔어요. 1992년 현릉을 고치는 공사 때 무덤 둘레에서 왕건의 모습을 한 청동상이 나왔는데, 앉은 키 1m가 넘는 이 상은 원래 비단옷을 입혀 모셨던 것으로 보여요. 신혜왕후도 현릉에 함께 묻혔다고 전해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상상으로 그린 것

    왕륭과 왕건, 왕건과 류씨가 나눈 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장수들이 문을 나서며 외친 말의 말투는 상상으로 지었어요. 네 장군과 왕건, 류씨 부인의 말은 『고려사』를 바탕으로 줄여 옮겼어요. 왕건이 류씨를 만난 해와 다시 찾은 해는 기록에 없어 ‘어느 해’로 두었어요.

    『고려사』

이번 화의 열쇠말

다음 화 예고 · 준비 중

제56화 · 공산의 피

927년 대구 공산. 견훤의 군사에게 둘러싸인 왕건을 살리려고, 신숭겸은 왕의 옷을 입고 왕의 수레에 올랐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