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재는 사람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세종은 집현전에 젊은 학자들을 모아 밤새 책을 읽게 했다. 늙은 농부들에게 물어 『농사직설』을 펴냈고, 새 세금 법을 정하기 전에 온 나라 백성 17만여 명에게 뜻을 물었다. 관청 여종에게는 아이를 낳기 전후로 쉬게 하고, 1434년에는 그 남편에게도 서른 날을 쉬게 했다. 그 무렵, 임금 곁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등장인물
임금 곁에서 하늘을 쟀다
1433년 서른일곱 살
장영실의 벼슬에 반대했다
장영실의 벼슬에 찬성했다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하늘을 재던 몇 해만이,
실록에 남아 있다.
그는 경상도 동래현 관청에 딸린 노비였다. 아버지는 원나라 소주·항주 사람, 어머니는 기생이었다.
돈다고?
손재주가 남달라, 고장 난 것은 무엇이든 고쳐 냈다.
그 솜씨가 한양까지 알려져, 그는 태종 때부터 궁궐에 불려 와 물건을 만들고 고쳤다.
새 임금은 그를 아꼈다.
1423년 무렵, 임금은 그에게 벼슬을 주려 했다. 신하들의 뜻이 갈렸다.
어찌 상의원에
앉히겠사옵니까.
상의원에 더욱
맞사옵니다.
임금은 대신들에게 다시 물은 끝에, 그를 궁궐의 물건을 만드는 상의원의 별좌로 삼았다. 노비가 벼슬을 받은 것이다.
그 무렵 조선은 하늘의 시각을 중국에 기대고 있었다.
중국의 달력과 시각은 중국 하늘에 맞춘 것이었다. 한양의 해는 베이징의 해보다 일찍 떴고, 일식이 일어나는 시각도 어긋났다.
임금은 조선의 하늘을,
조선의 눈금으로 재고 싶었다.
1432년,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돌을 쌓아 높은 대를 짓기 시작했다 — 간의대.
대 위에는 별의 자리를 재는 기구 ‘간의’를 올렸다.
하늘의 둥근 길을 구리 고리로 본뜬 혼천의가 돌았다.
밤마다 관리들이 대에 올라 별을 쟀다. 그 가운데 노비로 태어난 사람이 있었다.
조선의 하늘이, 처음으로 조선의 눈금으로 재어지기 시작했다.
1433년 가을, 그는 물의 힘으로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를 만들어 냈다 — 자격루.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공이 작지 않다.
임금은 그에게 정사품 벼슬 ‘호군’을 더해 주었다.
1434년 7월 1일.
경복궁 보루각에서, 새 물시계가 처음으로 시각을 알렸다.
물이 항아리에서 항아리로 흘러내리면, 물 위에 뜬 잣대가 조금씩 떠올랐다.
잣대가 정해진 눈금에 닿으면, 구리 구슬이 굴러 떨어지고 —
구슬이 나무 인형의 팔을 건드려, 종과 북과 징을 울렸다.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물시계가 스스로 시각을 알렸다.
그 소리를 받아 종루의 큰 종이 울리면, 한양의 성문이 열리고 닫혔다.
온 도성이, 한 사람이 맞춘 시각에 맞추어 하루를 살았다.
그해 10월, 해시계 앙부일구가 혜정교와 종묘 앞 길가에 놓였다.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였다.
말한테 왔어!
아버지 진지
갖다 드리러 가자.
글을 모르는 백성도 볼 수 있도록, 시각마다 글자 대신 열두 동물신을 그려 넣었다.
해시계에는 이런 글이 새겨졌다. ‘이제부터 백성이 일할 때를 알리라.’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한 시계.
그로부터 아홉 해 뒤, 임금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든다.
1438년, 장영실이 임금의 편전 곁에 흠경각을 지었다. 그 안의 ‘옥루’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산 아래로, 사계절 농사짓는 사람들의 인형이 움직였다.
백성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오.
1441년, 세자(훗날의 문종)가 비가 올 때마다 구리 그릇에 빗물을 받아 그 깊이를 재기 시작했다.
이듬해 임금은 같은 크기의 측우기를 만들어 서울과 여러 고을에 두고, 비가 내린 양을 적어 올리게 했다.
1442년 봄. 임금의 몸은 여러 해 앓아 온 병으로 지쳐 있었다. 눈은 가까이 있는 사람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어두워졌다.
그해 장영실은 임금이 탈 가마 ‘안여’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1442년 3월, 그가 감독해 만든 임금의 가마가 부러지고 무너졌다.
의금부는 그를 가두고 물었다. 임금이 타실 가마를 튼튼히 만들지 못한 죄였다.
곤장 백 대를 아뢰자, 임금은 두 등급을 낮추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벼슬에서 쫓겨났다.
그해 어느 밤, 간의대 위의 혼천의는 멈추어 있었다.
많이 아끼셨지요.
나는 그 사람의 시간을
지켜 주지 못했소.
그 뒤로, 실록에는 장영실이라는 이름이 다시 나오지 않는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
임금이 왜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는지도, 기록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떠난 뒤에도, 물시계는 날마다 스스로 종을 쳤다.
해시계의 그림자는 날마다 열두 동물 위를 지나갔다.
그는 하늘의 시간을 재었지만, 자기의 시간은 어디에도 적어 두지 않았다.
지금 고궁에는 뒷날 다시 만든 앙부일구와 자격루가 남아 있다.
해가 나면, 그림자는 오늘도 열두 동물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그 그림자가 가리키는 시각이,
그가 남긴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