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왕자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형제와 개국 공신들을 베고 1400년 조선의 셋째 임금 태종이 되었다. 태종은 왕의 힘을 넘보는 이라면 공신이든 처가든 가리지 않았다. 아내 원경왕후의 남동생 넷도 모두 그의 손에 죽었다. 그런 태종에게는 왕비가 낳은 네 아들이 있었다 — 양녕, 효령, 충녕, 성녕. 왕위는 맏아들 양녕대군의 것이었다.
등장인물
훗날의 세종
두 살 위 · 훗날의 소헌왕후
왕위를 물려주고도 군사를 쥐었다
충녕의 맏형
1418년 영의정
왕자는 몸이 아픈데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내관을 보내 방 안의 책을 모두 거두어 가게 했다.
마마.
한 권만 두고 가게.
내관들은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텅 빈 방. 그런데 병풍과 벽 사이에, 미처 거두어 가지 못한 책 한 권이 끼어 있었다.
남았구나.
책의 이름은 『구소수간』.
송나라의 문장가 구양수와 소식이 벗들에게 써 보낸 짧은 편지들을 모은 책이었다.
왕자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눈이 내리고, 꽃이 피고, 장맛비가 그치고, 잎이 지는 동안 —
천백 번.
책장 귀퉁이가 닳아 둥글어질 때까지.
그 왕자의 이름은 이도.
1397년 4월, 한양 준수방에서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아직 왕이 되기 전이었다.
셋째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었다. 왕위는 맏형 양녕대군의 몫이었다.
셋째 아들에게 허락된 일은,
조용히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1408년 봄, 열두 살 충녕군은 두 살 위의 심씨와 혼인했다. 임금의 비서 일을 보던 심온의 딸이었다.
좋아하시오?
조금 압니다.
충녕은 몹시 추운 겨울밤에도, 몹시 더운 여름밤에도 날이 샐 때까지 책을 읽었다.
더 읽고.
아내는 말없이 등잔의 심지를 돋우어 주었다.
맏형 양녕대군은 책보다 사냥과 풍류를 좋아했다. 아버지의 꾸중이 잦아질수록, 형제 사이도 멀어져 갔다.
동생은 형에게 몸가짐을 바로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형은 그런 동생이 달갑지 않았다.
1418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자 양녕은 거듭 잘못을 저질렀고, 꾸짖는 아버지에게 원망하는 글까지 올렸다.
6월 3일, 태종은 맏아들을
세자 자리에서 내렸다.
신하들 대부분은 양녕의 어린 아들을 세우자고 했다. 그러나 태종은 ‘어진 이’를 고르기로 했다.
배우기를 몹시 좋아한다.
병이 날까 밤에는 읽지 말라 일렀거늘,
내 큰 책들을 모두 가져다 읽었다.
큰일을 물으면 내가 생각지 못한 뜻을 내놓는다.
1418년 8월 8일, 태종은 세자를 불러 임금의 도장 ‘대보’를 내밀었다.
받아라.
이제는 족하다.
세자는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태종이 그 소매를 잡아 일으켜 대보를 건넸다.
1418년 8월 10일.
세자가 된 지 두 달 만에, 충녕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조선의 넷째 임금. 스물두 살이었다.
아내 심씨는 왕비가 되었다. 스물네 살이었다.
그러나 상왕이 된 태종은, 군사를 다스리는 권한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새 임금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상왕 태종이 무엇보다 경계한 것은 임금 곁에서 커지는 힘 — 왕비의 집안, 외척이었다.
그는 자기 아내의 남동생 넷을 모두 죽인 사람이었다.
이제 그 눈이,
새 왕비의 아버지를 향했다.
1418년 9월.
왕비의 아버지 심온은 영의정이 되어, 사신으로 명나라에 떠났다.
새 임금의 장인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로, 도성이 거의 비다시피 했다.
그가 없는 사이, 군사 일을 상왕보다 임금에게 먼저 아뢴 신하들이 붙잡혔다. 고문 끝에, 그들의 입에서 심온의 이름이 나왔다.
12월, 명나라에서 돌아오던 심온은 도성에 닿기도 전에 붙잡혔다.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상왕의 명을 받았다.
딸이 왕비가 된 지, 넉 달 만이었다.
왕비의 어머니와 집안사람들은 천인이 되었다.
임금은 아버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군사도, 옥사도, 모두 상왕의 손에 있었다.
임금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인의 장례에 쓸 관과 종이와 석회를 내리고 내관을 보내 장례를 살피게 하는 일뿐이었다.
스물두 살의 임금은,
아내의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다.
조정에서는 죄인의 딸을 어찌 국모의 자리에 두겠느냐며, 왕비를 폐하자는 말이 나왔다.
친정의 죄에 얽히지 않는 법이다.
왕비의 아버지를 죽인 상왕이, 왕비의 자리는 지켜 주었다.
그날 밤, 왕비의 방에는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 임금이 왕비의 방 앞에 섰다.
세종…나는 임금인데도, 장인어른 한 분을 지켜 드리지 못했소.
왕비는 대답 대신, 낡은 책 한 권을 꺼냈다.
『구소수간』이었다.
소헌왕후책을 다 빼앗기셨던 날, 병풍 뒤에 이 책을 남겨 둔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직 모르시지요.
세종…중전이었소?
소헌왕후그날부터 신첩은 전하의 편이었습니다. 오늘도, 앞으로도.
등잔불이 다 탈 때까지, 임금은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어떤 기록에도 없다.
기록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왕비는 그 뒤로 스물여덟 해 동안,
왕의 곁을 지켰다.
1422년, 상왕 태종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426년 5월, 임금은 왕비의 어머니 안씨를 천인의 굴레에서 풀어 주었다.
서로 보지 못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6월 초 좋은 날을 골라, 왕비를 어머니의 집에 다녀오게 했다. 아버지를 잃던 겨울 뒤로, 처음 보는 어머니였다.
『구소수간』은 편지를 모은 책이었다.
남이 쓴 편지를 천백 번 읽은 그 왕자는,
왕위에 오른 지 스물다섯 해째 되던 겨울 —
누구나 제 손으로 편지를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