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라는 이름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화에서는 백제의 무왕을 만났다. 『삼국유사』는 마를 캐던 소년 서동이 서라벌에 노래 한 자락을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 공주와 맺어지고, 왕이 되어 용화산 아래에 미륵사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속 무왕은 진평왕과 서른 해 가까이 싸운 맞수였고, 2009년 익산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금판에는 사리를 모신 왕후가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적혀 있었다.
등장인물
예순넷에 왕위에 오른다
내물왕의 4대손
(상상 인물)
(상상 인물)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이번 이야기는 지난 화보다 100년쯤 앞선 500년,
백제의 동쪽 이웃 나라에서 시작된다.
그 나라는 아직 이름도 하나가 아니었다.
사라, 사로, 신라 —
500년 겨울, 소지마립간이 아들 없이 세상을 떠났다.
왕위는 내물왕의 증손자 지대로에게 돌아갔다. 그의 나이 예순넷이었다.
『삼국사기』는 새 임금이 몸집이 아주 크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적었다.
보리는 애써 웃었지만, 그 밤 아무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때까지 신라에서는 왕이 세상을 떠나면, 남녀 다섯 사람씩을 함께 묻었다.
산 사람을 죽은 이와 함께 묻는 이 풍습을 ‘순장’이라 한다.
502년 2월, 왕이 명을 내렸다.
이제 순장이 없어졌대요!
502년 3월, 왕은 주와 군의 우두머리들에게 명하여 농사를 권하게 했다.
이해에 처음으로 소를 부려 밭을 갈게 했다고, 『삼국사기』는 적었다.
503년 10월, 신하들이 한뜻으로 왕에게 아뢰었다.
그때까지 신라의 임금은 ‘마립간’ 같은 우리말 칭호로 불렸다.
신하들이 올린 이름을, 왕은 그대로 따랐다.
나라 이름은 ‘신라’, 임금은 ‘왕’.
羣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 『삼국사기』
504년, 상복을 입는 법을 정해 온 나라에 폈다.
505년 2월, 왕은 몸소 나라 안의 주·군·현을 정했다.
그리고 동해 바닷가에 실직주를 두고,
처음으로 ‘군주’를 세웠다.
그해 겨울, 왕은 처음으로 얼음을 저장하게 하고, 배를 쓰는 제도를 정했다.
509년 정월, 서울에 동쪽 시장 ‘동시’를 두었다.
512년.
이찬 이사부는 하슬라주(지금의 강릉)의 군주가 되어 있었다.
그 동쪽 바다에, 끝내 신라를 따르지 않는
섬나라가 있었다.
우산국. 『삼국사기』는 명주(지금의 강릉) 바로 동쪽 바다의 섬이며, 울릉도라고도 한다고 적었다.
이사부는 나무로 사자 인형을 여럿 만들게 했다.
나무 사자들을 여러 싸움배에 나누어 싣고, 동쪽 바다로 나섰다.
『삼국유사』는 순풍이면 이틀 걸리는 뱃길이었다고 전한다.
안개를 뚫고, 사자를 실은 배들이 다가왔다.
이사부가 섬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외쳤다.
512년 6월, 우산국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곧 항복했다.
그 뒤로 우산국은 해마다 그 땅에서 나는 것을 바쳤다.
514년, 왕은 아시촌에 작은 서울(소경)을 두고
6부와 남쪽 땅의 사람들을 옮겨 살게 했다.
그해, 지증왕이 세상을 떠났다.
순장을 멈추게 한 왕은, 그렇게 떠났다.
나라에서는 세상을 떠난 왕에게 ‘지증(智證)’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신라에서 왕에게 시호를 올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정한 이름 ‘신라’는,
그 뒤로 400년 넘게 이어졌다.
왕위는 맏아들 원종이 이었다. 법흥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