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피의 기적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화에서는 신라의 지증왕을 만났다. 예순넷에 왕위에 오른 그는 순장을 금하고 소갈이를 권했으며, 503년 나라 이름을 ‘신라’, 임금의 칭호를 ‘왕’으로 정했다. 512년에는 장수 이사부가 나무 사자의 꾀로 동해의 우산국을 항복받았다. 514년, 지증왕의 뒤를 맏아들 원종이 이었다.
등장인물
이름은 원종
『삼국유사』에선 스물두 살
『삼국유사』가 향전에서 옮긴 이름
옛이야기 속 인물
마지막 왕
514년, 지증왕이 세상을 떠나고 맏아들 원종이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는 새 왕이 키가 일곱 자이고, 너그러워 사람을 아꼈다고 적었다.
520년 정월, 왕은 나라의 법인 율령을 반포하고, 관리들이 입을 옷(공복)을 처음 정했다.
나라를 다스린다!
벼슬 높은 순서대로 자줏빛·붉은빛·푸른빛·누런빛 옷을 입었다.
524년, 동해 바닷가 마을 거벌모라에 비석 하나가 섰다.
장 60대, 장 100대에 처한다!
비석에는 왕 ‘모즉지 매금왕’과 함께 일을 정한 귀족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졌다. 왕은 아직 귀족들과 함께 나랏일을 정했다.
백 년쯤 전에는, 이 나라의 임금도 신하도 향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온 승려 묵호자가 일선군(지금의 구미 선산)에 이르자, 모례가 집 안에 굴방을 만들어 그를 머물게 했다.
정성이 신성한 데까지
닿습니다.
묵호자가 향을 사르며 빌자, 왕의 딸이 앓던 깊은 병이 곧 나았다고 한다.
소지왕 때에는 승려 아도가 시자 셋과 함께 모례의 집에 왔다.
뭘 읽는 거지?
아도는 몇 해 뒤 세상을 떠났지만, 남은 시자들이 경전을 읽자 믿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났다.
백성을 위해 복을 닦고
죄를 씻을 곳을 세우고 싶었다.
왕이 천경림에 절을 세우겠다고 하자, 신하들이 고개를 저었다.
신성한 숲이옵니다.
절이라니요!
신하들은 나라 다스리는 큰 도리만 내세우며, 절을 짓자는 왕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곁을 지키던 이차돈은 왕의 얼굴만 보고도, 그 마음을 알았다.
『삼국유사』는 그 밤, 두 사람이 남몰래 한 약속을 전한다.
올리고자 합니다.
제 목을 베소서.
감히 가르침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새 한 마리를 살렸다 하였다.
어찌 죄 없는 너를
죽이겠느냐!
목숨만 한 것은 없지요.
저녁에 죽어
아침에 행해진다면—
하늘 높이 날 뜻을 품는다더니…
『삼국사기』에는 남몰래 한 약속 이야기가 없고, 이차돈이 ‘저를 베어 뭇사람의 의논을 정하소서’라고 아뢰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삼국유사』는 527년,
『삼국사기』는 528년의 일로 적었다.
『삼국유사』에 실린 향전에 따르면, 이차돈은 ‘왕의 명’이라며 절 짓는 일을 시작했다.
이 숲에 절을 짓는다!
왕은 위엄을 갖추고 칼과 창을 든 군사를 사방에 세운 뒤, 신하들을 불렀다.
과인이 절 짓는 것을 막는가?
『삼국사기』는 신하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아뢰었다고 전한다.
옷차림이 괴이하며,
하는 말도 괴상하옵니다!
그 명은 받들 수
없사옵니다!
비상한 일이 있는 법입니다.
너 홀로 다른 말을 하는구나.
…끌어내라!
왕은 마침내 그를 관리에게 넘겨 목을 베게 했다.
관리들이 그를 묶어 관아로 끌고 갔다.
내 죽음에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으리라!
왕은 끝내 그를 붙잡지 않았다.
흰 젖빛 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
목을 베자, 잘린 자리에서 젖처럼 흰 피가 한 길이나 솟구쳤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리며, 꽃비가 흩날렸다고 전한다.
샘물이 마르고 물고기가 뛰어오르며,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졌다고도 한다.
향전에는, 그의 머리가 날아가 북쪽 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삼국유사』는 왕이 슬피 울어, 눈물이 옷자락을 적셨다고 전한다.
『삼국사기』는 그날의 일을 이렇게 끝맺는다.
사람들이 모두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
衆怪之 不復非毁佛事 — 『삼국사기』
사람들은 그를 북산의 서쪽 고개, 금강산에 묻었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좋은 터를 골라, 자추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532년, 금관국의 왕 김구해가 왕비, 세 아들과 함께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했다.
옛 나라 땅을 그대의 식읍으로 주겠소.
왕은 그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다. 막내아들 무력은 뒷날 각간에 올랐고, 그 손자가 김유신이다.
535년, 천경림의 나무를 크게 베어 절을 짓기 시작했다. 들보와 기둥은 모두 그 숲에서 나왔다.
536년, 신라는 처음으로 스스로 해를 세는 이름(연호)을 썼다. ‘건원’이다.
540년 가을 7월, 법흥왕이 세상을 떠났다.
나라에서는 ‘법을 일으켰다’는 뜻의 이름,
‘법흥(法興)’을 올렸다.
천경림의 절, 흥륜사는 네 해 뒤인 544년에 다 지어졌다.
약 290년 뒤인 817년, 사람들은 그의 무덤을 고치고 큰 비를 세웠다.
매달 닷샛날이면, 흥륜사의 스님과 사람들이 그 무덤에 모여 그의 넋을 기렸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두 사람을 두고 이렇게 적었다.
이 임금이 없었다면 이 신하도 없었고,
이 신하가 없었다면 이 일도 없었다.
無是君無是臣 無是臣無是功 — 『삼국유사』
왕위는 법흥왕의 조카이자 외손자인 삼맥종이 이었다. 진흥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