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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노량, 마지막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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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노량, 마지막 바다

이순신 ⑦ · 노량 해전 · 15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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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1597년,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던 이순신은 계급 없이 싸움터를 따르는 ‘백의종군’ 길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들었다. 그사이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무너졌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에게 남은 배는 열두 척이었다. 그해 9월 명량(울돌목)에서 그는 열세 척으로 일본 배 133척을 막아 냈다. 그러나 한 달 뒤, 고향 아산의 집을 지키던 셋째 아들 면이 일본군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등장인물

이순신삼도수군통제사
1598년, 쉰네 살
진린명나라 수군 도독
조선을 도우러 왔다
이회이순신의 맏아들
이완이순신의 조카
스무 살
시마즈 요시히로일본군 장수
고니시를 구하러 온다
막동대장선의 북잡이 소년
(지어낸 인물)

1598년 11월 19일 아침, 남해 관음포 앞바다.

연기 자욱한 바다 위로, 조선 대장선의 북소리가 그치지 않고 울렸다. 그 북소리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싸우던 군사들은 아무도 몰랐다.

이야기는 석 달 전으로 돌아간다.

1598년 8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조선을 쳐들어온 지 일곱 해. 일본군은 그의 죽음을 숨긴 채, 몰래 조선 땅을 떠나려 했다.

남해안 순천의 왜교성에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사 1만 4천여 명이 갇혀 있었다.

이순신삼도수군통제사진린명나라 수군 도독

바다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진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이 막고 있었다.

살 길이 막힌 고니시는 진린에게 칼과 술과 비단을 보내며 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진린돌아가겠다는 적을
굳이 막을 까닭이 있겠소?
이순신대장은 화친을 말해서는
안 되오. 원수는
놓아 보낼 수 없소!

그러나 그사이 고니시의 작은 배 한 척이 바다를 빠져나가, 사천에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청했다.

시마즈 요시히로일본군 장수

11월 18일 저녁, 시마즈와 장수들이 이끄는 배 500여 척이 노량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순신적이 노량으로 온다.
우리가 먼저 노량으로 간다.

이순신은 순천 앞바다의 포위를 풀고, 밤바다를 건너 노량 물목으로 배를 몰았다. 조선 배 80여 척, 명나라 배 300여 척이었다.

대장선의 큰북 곁에는 열다섯 살 북잡이 소년 막동이 있었다. 막동의 아버지는 지난해 칠천량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막동대장선의 북잡이 · 열다섯 살
이순신떨리느냐?
막동…아, 아니옵니다!
이순신나도 지난해에
아들을 잃었다.
북소리가 그치지 않으면
군사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북을 멈추지 마라.
막동예, 대감!

한 해 전 1597년 10월 14일, 아들 면의 죽음을 들은 날 이순신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해마저 빛을 잃었다고 그는 적었다. 그 뒤로도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11월 18일 자정.

이순신은 배 위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꿇었다.

이순신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그때, 큰 별 하나가 바다 가운데로 떨어졌다.

보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고 『행록』은 적었다.

11월 19일 새벽 두 시 무렵.

좁은 노량 물길에
일본 배 500여 척이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등불을 단 배들이 끝없이 밀려왔다.

이순신쏘아라!

불화살이 하늘을 덮고, 총통이 불을 뿜었다.

바람을 등진 조선 수군은 불붙인 섶과 화살로 적의 배를 태웠다.

바다가 불탔다.

조선과 명의 배 사이로, 불붙은 왜선들이 서로 엉켜 부서졌다.

그 불빛으로, 밤바다가 대낮처럼 밝았다.

날이 밝아 올 무렵, 진린의 배가 적에게 둘러싸였다. 적이 배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순신도독을 구하라!
배를 돌려라!

명나라의 일흔 살 노장 등자룡은 불타는 배 위에서 끝까지 싸우다 숨졌다. 조선의 장수들도 여럿 쓰러졌다.

쫓기던 일본 배들은 넓은 바다로 나가는 길인 줄 알고 관음포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막힌 포구였다.

빠져나갈 길이 없어진 적은 죽기로 맞서 싸웠다.

이순신은 뱃머리에 서서 싸움을 이끌었다.

이순신한 놈도 놓치지 마라!

그때, 날아온 탄환이 그의 왼쪽 가슴을 꿰뚫었다.

이회아버지!

이순신싸움이 급하다.

이순신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1598년 11월 19일. 그는 쉰넷이었다.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은 울음을 삼켰다. 지금 곡을 하면 군사들이 흔들리고, 적이 그 틈을 탈 것이었다.

이완숙부님의 명이다!
깃발을 올려라!
끝까지 쫓아라!

두 사람은 시신을 방 안으로 옮기고, 그대로 깃발을 흔들며 싸움을 독려했다. 가장 가까운 장수들조차 그 사실을 몰랐다.

막동은 북을 쳤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북채를 멈추지 않았다.

이순신무슨 일이 있어도
북을 멈추지 마라.

싸움은 한낮이 되어서야 끝났다. 일본 배 200여 척이 부서지거나 불탔다.

시마즈는 남은 배 50여 척을 이끌고 겨우 달아났고, 고니시는 그 틈에 다른 물길로 빠져나갔다.

싸움이 끝나자 진린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조선 대장선으로 배를 몰아 왔다.

진린노야께서 살아서 나를
구하러 오신 줄 알았는데,
어찌하여 돌아가셨습니까!

그리고 그 죽음을 들었다. 진린은 배 위에 세 번이나 몸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그제야 군사들은 알았다.

온 군중이 통곡하니, 그 소리가 바다를 뒤흔들었다.

조선의 군사도, 명나라의 군사도 함께 울었다.

북소리가 멈추고, 바다에는 울음소리만 남았다.

이순신의 상여는 고금도를 거쳐 고향 아산으로 갔다.

상여가 지나는 곳마다 선비와 백성들이 길을 막고 울며 제사를 올렸다.

일곱 해에 걸친 전쟁이 끝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자기 목숨이 아니라
싸우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마흔다섯 해 뒤, 나라는 그에게 ‘충무’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가 남긴 시조 한 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달 밝은 한산섬, 망루에 홀로 앉아 큰 칼을 곁에 두고 깊이 근심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가 애를 끊는구나.

제102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노량 해협과 노량대교·남해대교오늘의 노량 해협과 노량대교·남해대교 (남해 쪽에서)

    노량 해전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새벽부터 한낮까지, 경상도 남해와 하동 사이의 좁은 바다 노량과 남해섬의 관음포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큰 싸움이에요. 조선 배 80여 척과 명나라 배 300여 척이, 순천 왜교성에 갇힌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하러 온 시마즈 요시히로 등의 배 500여 척과 맞섰어요. 조선 수군은 바람을 등지고 불로 공격했고, 날이 밝을 무렵 관음포로 몰린 적과 끝까지 싸웠어요. 일본 배 200여 척이 부서지거나 불탔다고 기록은 전해요(숫자는 기록마다 조금씩 달라요).

    『선조실록』 31년 11월 · 『징비록』 · 『이충무공행록』
  2.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이락사 일대) 전경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이락사 일대)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

    조카 이분이 쓴 『이충무공행록』은 이순신이 싸움을 이끌다 날아온 탄환에 맞자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戰方急 愼勿言我死) 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적었어요. 곁에 있던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은 울음을 참고 시신을 방으로 옮겼고,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둘과 종 금이뿐이었으며 가까운 장수 송희립조차 몰랐다고 해요. 완은 그대로 깃발을 흔들며 싸움을 이끌었어요. 유성룡의 『징비록』도 같은 마지막 말을 전하며, 그 죽음이 알려지자 군사들의 울음소리가 바다를 진동했다고 적었어요.

    『이충무공행록』 · 『징비록』
  3. 자정의 기도와 떨어진 별

    『이충무공행록』은 11월 18일 밤 자정 무렵 이순신이 배 위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꿇어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늘에 빌었고, 그 무렵 큰 별이 바다에 떨어져 보는 이들이 이상히 여겼다고 적었어요. 같은 책은 진린이 고니시의 뇌물을 받고 화친을 말하자 이순신이 ‘대장은 화친을 말할 수 없고, 원수는 놓아 보낼 수 없다’고 맞섰다고도 전해요.

    『이충무공행록』
  4. 진린과 등자룡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은 처음엔 조선 수군을 업신여겼지만, 이순신과 함께 싸우며 그를 ‘노야’(어르신)라 부를 만큼 공경하게 되었다고 해요. 노량에서 적에게 둘러싸인 진린을 이순신이 구해 냈고, 싸움이 끝난 뒤 그 죽음을 들은 진린은 배 위에 세 번이나 몸을 던지며 통곡했다고 『행록』은 적었어요. 일흔이 넘은 명나라 장수 등자룡도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고, 조선에서도 가리포 첨사 이영남, 낙안 군수 방덕룡, 흥양 현감 고득장 등이 전사했어요.

    『이충무공행록』 · 『선조실록』
  5. 국보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국보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아들 면과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셋째 아들 면(21세)이 아산 집을 습격한 일본군과 싸우다 죽었다는 편지를 받은 날, 이순신은 일기에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고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다’고 적었어요. 『난중일기』는 1592년 1월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그가 진중에서 쓴 일기로,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에요.

    『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6.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는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시조예요. 수루는 적을 살피는 망루, 일성호가는 한 가락 피리 소리예요. 한산도의 제승당(통제영 자리)에는 지금 수루가 다시 지어져 있어요.

    『이충무공전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아산 현충사 본전아산 현충사

    상여가 지나는 길, 그리고 그 뒤

    『행록』은 상여가 아산으로 가는 길에 선비와 백성들이 길을 막고 울며 제사를 올렸다고 적었어요. 이순신은 1599년 아산에 묻혔고(1614년 지금의 어라산으로 옮김), 1643년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어요. 그가 처음 뭍에 오른 관음포 바닷가에는 1832년 이락사가 세워졌고, 시신을 잠시 모셨던 남해 충렬사와 아산 현충사에 그를 모시고 있어요.

    『이충무공행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통영항에 떠 있는 거북선 복원선통영항에 떠 있는 거북선 복원선

    상상으로 그린 것

    북잡이 소년 막동과 그 아버지, 이순신이 소년에게 건넨 말은 지어낸 이야기예요. 이순신이 쓰러진 자리와 때(관음포, 아침)는 기록을 따랐지만, 그가 뱃머리에서 외친 말, 이완이 외친 말, 진린과 나눈 말의 말투는 상상으로 다듬었어요. 노량 해전에 거북선이 함께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아, 이 화에서는 판옥선만 그렸어요.

    『이충무공행록』 · 『징비록』

이번 화의 열쇠말

다음 화 예고 · 준비 중

제103화 · 백성을 위한 의학 책

전쟁은 끝났지만 병과 굶주림이 남았다. 피란길에서도 왕을 따랐던 의원 허준은, 누구나 펼쳐 볼 수 있는 의학 책을 쓰기 시작한다 — 『동의보감』.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