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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아신왕의 맹세
제20화

아신왕의 맹세

광개토대왕 ② · 3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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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열여덟 살에 왕이 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담덕)은 392년 백제의 성 10여 곳과 바다에 둘러싸인 관미성을 빼앗았다. 숙부 진사왕의 뒤를 이은 백제의 아신왕은 외삼촌 진무에게 그 치욕을 씻어 달라고 했지만, 393년 관미성 공격은 군량이 끊겨 물러났고 394년과 395년에도 잇달아 졌다. 395년 겨울,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선 아신왕은 청목령에서 큰 눈을 만나 돌아서야 했다.

등장인물

아신왕백제의 왕.
관미성을 되찾으려 했다
광개토대왕고구려의 왕 담덕.
몸소 수군을 이끈다
진무백제의 장수.
아신왕의 외삼촌
전지아신왕의 맏아들.
백제의 태자
왕의 아우아신왕의 아우.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광개토대왕이제 고구려가 남쪽으로 간다.
아신왕관미성은 되찾아야 한다.

395년 겨울. 북쪽의 왕과 남쪽의 왕은 같은 눈을 맞고 있었다.

이듬해 396년, 두 나라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이 싸움이 실려 있지 않다.

以以以六六六年年年丙丙丙申申申王王王躬躬躬率率率水水水軍軍軍討討討伐伐伐殘殘殘國國國

고구려가 세운 광개토대왕릉비만이, 이긴 쪽의 목소리로 그해의 일을 전한다.

비석은 백제를 ‘백잔(百殘)’이라 낮춰 부르며, 그해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영락 6년 병신년,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잔국(백제)을 토벌하였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 광개토대왕릉비

396년, 광개토대왕은 몸소 수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나섰다.

광개토대왕고구려의 왕 · 담덕
광개토대왕이번에는 바닷길로 간다.
곧장 백제의 도성으로!
백제 파수꾼붉은 돛이다! 바다를 덮었다!

소식은 곧 백제의 도읍 한성에 닿았다.

아신왕백제의 왕진무아신왕의 외삼촌 · 좌장
아신왕고구려 왕이 몸소… 이번엔 바다로 왔단 말이냐.
진무성마다 굳게 지키라 이르겠습니다!

비석에는 이때 고구려가 빼앗은 백제의 성 이름이 줄줄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백제서해대동강예성강임진강평양성고구려의 큰 성한성백제의 도읍수군의 길 (추정)아리수(한강)빼앗은 성 58 · 마을 700비석에 성 이름이 줄줄이 새겨져 있다58성의 자리는 대부분 알 수 없고,수군이 지난 길도 짐작일 뿐이다

고구려군은 백제의 성을 하나하나 빼앗으며, 도성으로 다가갔다.

백제 군사성벽을 지켜라!

고구려군이 도성 가까이 이르자, 백제군이 성을 나와 맞서 싸웠다.

진무물러서지 마라! 도성을 지킨다!

광개토대왕은 크게 노하여, 아리수를 건넜다.

광개토대왕아리수를 건너라!

비석의 ‘아리수’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본다.

백제군은 성안으로 물러났고, 고구려군은 곧바로 도성을 에워쌌다.

아신왕…저들이 모두, 과인의 백성이다.
아이엄마, 하늘이 왜 저렇게 빨개?
어머니…쉿, 어서 자거라.

에워싸인 아신왕은 궁지에 몰렸다.

진무전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아신왕…아니오. 과인이 나가겠소.

그리고 어느 날,

아신왕은 고구려 왕 앞으로 나아갔다.

아신왕은 남녀 1천 명과 가는 베 1천 필을 바쳤다.

그리고 고구려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맹세했다.

아신왕지금부터 영원히…
노객이 되겠습니다.

노객(奴客)은 고구려 왕을 받들어 섬기는 신하라는 뜻이다.

광개토대왕앞서의 잘못은 용서하겠다.
이제부터 따르겠다는 그 정성은, 기록해 두마.
아신왕관미성은… 되찾아야 한다.

광개토대왕은 아신왕의 아우와 대신 열 명을 데리고, 도읍으로 돌아갔다.

왕의 아우아신왕의 아우
왕의 아우형님, 백제를… 부탁합니다.
아신왕아우야…

비석은 이 싸움으로 고구려가 성 58곳과 마을 700곳을 얻었다고 적었다.

아신왕지금부터 영원히, 노객이 되겠습니다.
경은 마음을 다해, 이 치욕을 씻어 주시오!
…무릎은 꿇었어도, 백제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아신왕바다 건너 왜와 손을 잡겠소.
진무왜가 우리를 믿겠습니까?
…태자를 보내겠소.

397년 5월, 아신왕은 왜와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전지아신왕의 맏아들 · 태자
아신왕…몸 성히 지내거라.
전지아바마마, 꼭 돌아오겠습니다.

전지가 백제로 돌아오는 것은 여덟 해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일이다.

397년 7월, 아신왕은 한수 남쪽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했다.

이듬해 2월, 진무는 나라의 군사를 맡는 병관좌평이 되었다.

398년 8월, 아신왕은 고구려를 치려고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섰다.

왕의 군사가 한산 북책에 이른 그날 밤, 큰 별이 진영에 떨어지며 소리가 났다.

백제 군사별이… 별이 떨어졌다!
아신왕하늘이… 가지 말라 하는가.

왕은 이를 몹시 꺼려, 군사를 거두었다.

399년 8월, 아신왕은 또다시 고구려를 치려고 군사와 말을 크게 거두었다.

늙은 농부말까지 데려가시면… 가을걷이는 어찌합니까.
관리왕명이오!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이 많이 신라로 달아났다.

아이엄마, 우리 어디 가?
어머니…살 수 있는 곳으로.

백제 땅의 집과 사람이 줄어들었다.

아신왕…모두, 과인의 탓이다.

광개토대왕릉비는 399년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손을 잡았다.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 광개토대왕릉비

그해 광개토대왕은 남쪽 평양으로 내려왔다.

광개토대왕무릎 꿇고 한 맹세를… 저버렸는가.

그때 신라 왕이 보낸 사신이 달려왔다.

신라 사신
신라 사신왜인이 국경에 가득 차, 성들을 마구 부수고 있습니다!
노객을 저들의 백성으로 삼으려 하니, 부디 명을 내려 주소서.

신라 사신은 자기 임금을 ‘노객’이라 낮추어 불렀다.

광개토대왕그대 왕의 충성이 갸륵하다.
돌아가거든, 이렇게 전하라…

태왕은 사신을 돌려보내며, 은밀한 계책을 일러 주었다.

북쪽의 왕과 남쪽의 왕. 한 사람은 맹세를 받았고, 한 사람은 그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

아신왕지금부터 영원히, 노객이 되겠습니다.
전지아바마마, 꼭 돌아오겠습니다.

무릎 꿇고 한 맹세는, 그렇게 깨졌다.

이듬해 400년, 광개토대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하게 한다.

제20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광개토대왕릉비광개토대왕릉비 · 중국 지린성 지안

    비석만이 기억하는 싸움

    396년(영락 6년)의 싸움은 광개토대왕릉비에만 나와요. 『삼국사기』는 고구려본기에도 백제본기에도 이 싸움을 적지 않았고, 아신왕 조에는 아예 5년(396)의 기록이 없어요. 비석은 고구려가 세운 것이라 백제를 ‘백잔(百殘)’, ‘잔국’이라 낮춰 부르고, 무릎 꿇은 왕도 이름 없이 ‘잔주(殘主)’라고만 적었어요. 그해 백제의 왕이 아신왕이므로 잔주를 아신왕으로 보는 거예요.

    광개토대왕릉비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 ·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
  2. 쉰여덟 성과 칠백 마을

    비석에는 이때 빼앗은 성의 이름이 ‘일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하고 줄줄이 새겨져 있는데, 닳아서 읽을 수 없는 글자도 많아요. 대부분 지금의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아 학자마다 짐작하는 자리가 다르고, 그 가운데 ‘각미성’을 392년에 빼앗은 관미성과 같은 성으로 보기도 해요. 그래서 비석은 58성을 모두 396년에 얻은 것처럼 적었지만, 392년부터 396년까지 빼앗은 성을 이 해에 한꺼번에 적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아요. 비석은 백제 왕이 남녀 1천 명과 가는 베 1천 필을 바쳤고, 고구려가 58성 700촌을 얻었으며, 왕이 백제 왕의 아우와 대신 10명을 데리고 도읍으로 돌아갔다고 적었어요.

    광개토대왕릉비
  3. ‘노객’이라는 말

    비석에 따르면 백제 왕은 ‘지금부터 영원히 노객이 되겠다(從今以後 永爲奴客)’고 맹세했어요. 노객(奴客)은 고구려 왕을 받들어 섬기는 신하라는 뜻으로, 399년에 도움을 청한 신라 사신도 자기 임금을 ‘노객’이라 불렀어요. 고구려가 이웃 나라 임금들을 자기 아래의 신하로 여겼음을 보여 주는 말이지만, 고구려 쪽에서 쓴 글이라 백제와 신라가 정말 그렇게 여겼는지는 따로 생각해 봐야 해요.

    광개토대왕릉비
  4. 서울 몽촌토성몽촌토성 · 서울 송파구

    아리수와 한성

    비석은 고구려 왕이 ‘아리수(阿利水)’를 건넜다고 적었는데, 아리수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봐요. 서울의 수돗물 이름 ‘아리수’도 여기서 따왔어요. 강 남쪽에 있던 백제의 도읍 한성은 지금의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몽촌토성은 낮은 언덕을 이용해 흙을 쌓아 만든 성으로, 지금은 올림픽공원 안에 있어요.

    광개토대왕릉비 · 한성 백제 유적
  5. 바다를 건넌 태자 전지

    『삼국사기』는 397년 아신왕이 왜와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고 적었어요. 405년 아신왕이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우 훈해가 나랏일을 맡아 태자를 기다렸지만, 막내아우 설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어요. 전지는 왜에서 소식을 듣고 왜 군사 100명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고, 나라 사람들이 설례를 죽이고 전지를 왕으로 맞았어요(전지왕). 『삼국사기』는 그를 ‘직지(直支)’라고도 했는데, 『일본서기』에도 이 이름이 보여요.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전지왕
  6. 큰 별, 그리고 떠난 백성

    397~399년 백제의 사정은 『삼국사기』가 전해요(비석의 398년 조에는 동북쪽 숙신(비문에는 ‘백신(帛慎)’) 땅에 작은 군대를 보낸 일만 있어요). 398년 2월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삼고 3월 쌍현성을 쌓은 아신왕은, 8월 몸소 군사를 이끌고 한산 북책까지 나갔다가 밤에 큰 별이 진영에 떨어지며 소리가 나자 몹시 꺼려 그만두었어요. 399년 8월 다시 군사와 말을 크게 거두자,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이 많이 신라로 달아나 호구가 줄었다고 해요. 396년 싸움에서 진무가 앞장서는 모습, 아신왕이 백성을 살리려 무릎 꿇기로 마음먹는 장면, 도성 앞에서 칼을 내려놓고 맹세하는 모습, 왜와 손잡기로 하는 대화, 아우·아들과 헤어지며 나누는 말, 매와 빈 마을의 장면은 기록에 없는 상상이에요.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
  7. 광개토대왕릉비 탁본(부분)광개토대왕릉비 탁본(부분) · 미즈타니 탁본

    신묘년 기사, 한 문장의 여러 해석

    비문에서 396년 이야기 바로 앞에는 ‘왜가 신묘년(391)에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을 깨뜨리고 … 신민으로 삼았다’로 읽히는 대목(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이 있어요. 19세기 말부터 일본 학계는 이 문장을 왜가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았지만, ‘바다를 건너 깨뜨린’ 쪽을 고구려로 읽는 해석(정인보)과 비문의 글자가 고쳐졌다는 주장(1972년) 등이 나오며 오랜 논쟁이 이어졌어요. 글자를 일부러 고쳤다는 주장에는 뒤의 현지 조사와 탁본 연구로 반론이 많이 나왔지만, 지워진 글자가 있어 읽는 법은 지금도 학자마다 다르고, 고구려가 396년 원정의 명분을 세우려고 왜의 움직임을 크게 적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다만 이 문장을 근거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정복해 다스렸다는 주장은, 오늘날 학계에서 대체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광개토대왕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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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 신라를 구하라

400년, 고구려의 보병과 기병 5만이 신라를 구하러 남쪽으로 내려간다. 왜군으로 가득 찼다는 신라의 성,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긴 추격 —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한반도 남쪽 끝을 향한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