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왕, 다시 세운 나라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머슴살이와 소금 장사로 떠돌던 왕손 을불은 300년 고구려의 왕이 되어(미천왕) 313년 낙랑군을 몰아냈다. 331년 미천왕이 세상을 떠나 미천의 들에 묻히자, 태자 사유가 왕위를 이었다. 그가 고국원왕이다.
등장인물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연(전연)의 왕
훗날의 소수림왕
342년, 고국원왕은 산 위의 환도성을 고쳐 쌓고 가을 8월에 그리로 옮겨 살았다.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떠돌던 분이셨다.
그 무렵 요하 서쪽에서는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나라 연(전연)이 날로 커지고 있었다.
342년 겨울 10월, 연왕 모용황은 도읍을 용성으로 옮겼다.
그리고 먼저 고구려를 치기로 했다.
오리라 여길 것입니다.
험한 남쪽 길로 가십시오!
남쪽 길로 가겠다.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둘. 넓고 평평한 북도와, 험하고 좁은 남도였다.
넓은 북도로 올 것이다.
북도를 막아라!
왕 자신은 약한 군사를 이끌고 남도를 지켰다.
적의 대군이 남쪽으로 온다!
그러나 모용황이 이끄는 정예 4만은 험한 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용한의 선봉이 먼저 들이치고, 모용황의 대군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군은 크게 졌다. 연군은 그 기세로 환도성에 들어갔다.
왕은 홀로 말을 달려 단웅곡으로 몸을 피했다.
연의 장수 모여니가 뒤쫓아, 왕의 어머니 주씨와 왕비를 사로잡았다.
내 발로 가겠다.
북도로 간 연군 1만 5천은 고구려군과 싸워 모두 무너졌다. 모용황은 더 쫓지 않고, 사신을 보내 왕을 불렀다.
연왕께 엎드리시오!
왕은 나가지 않았다.
지켜 둘 수가 없습니다.
다시 모여들 것입니다.
한수가 말을 이었다.
그 아비의 시신을 싣고,
그 어미를 가두어 데려가십시오.
고구려 왕이 제 발로 찾아와 엎드리거든, 그때 돌려주면 됩니다.
모용황은 그 말을 따랐다. 연군은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수레에 실었다.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연군은 대대로 모아 온 보물을 거두고, 남녀 5만여 명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궁궐을 불사르고, 환도성을 허물고 돌아갔다.
무덤은 텅 비었고, 어머니는 적에게 끌려갔다.
어머니…
343년 봄, 왕은 아우를 연에 보내 신하를 칭하고, 진귀한 물건을 천여 점이나 바쳤다.
예물을 바치옵니다.
아비의 시신은 돌려주마.
…어미는 여기 남는다.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은 그렇게 고구려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볼모로 연에 남았다.
모셔 왔습니다.
왕의 어머니 주씨는 남의 나라에서 볼모로 해를 넘겼다.
밥은 잘 먹느냐.
해가 가고 또 갔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355년 정월, 왕은 아들 구부를 태자로 세웠다.
그해 겨울, 왕은 연에 볼모와 공물을 보내 어머니를 돌려 달라고 청했다.
연의 임금 모용준이
마침내 허락했다.
연의 장수 조감이 왕의 어머니를 고구려까지 모셔 왔다. 열세 해 만이었다.
그 무렵 남쪽에서는 백제가 크게 일어서고 있었다. 369년 9월, 왕은 군사 2만을 이끌고 백제를 쳤다.
그러나 치양에 진을 쳤다가, 백제 태자의 기습을 받아 크게 졌다.
370년, 고구려를 짓밟았던 연이 서쪽의 전진에게 무너졌다.
연의 태부 모용평이 고구려로 달아나 오자, 왕은 그를 붙잡아 전진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백제가 쳐들어왔다.
371년 10월, 백제의 근초고왕과 태자가 정예 군사 3만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물러서지 마라!
왕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맞서 싸웠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하나가, 왕을 맞혔다.
부탁한다.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그달 23일, 고국원왕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왕을 ‘고국의 들’에 묻었다. 그래서 그를 ‘고국원왕’이라 부른다.
태자 구부가 왕위에 올랐다. 소수림왕이다.
당장 백제를 쳐야 합니다!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세우겠다.
372년 여름,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경문을 전했다.
가져왔습니다.
같은 해, 왕은 태학을 세워 자제들을 가르치게 했다.
373년, 처음으로 율령을 반포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글로 정해 온 나라에 알린 것이다.
이 법을 따른다!
374년에는 승려 아도가 왔다. 이듬해 2월, 왕은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워 순도와 아도를 머물게 했다.
『삼국사기』는 이것을 ‘해동 불법의 시작’이라고 적었다.
다시 일어섰습니다.
쓰러진 아버지의 나라를, 아들은 믿음과 배움과 법으로 다시 세웠다.
그 뒤로도 백제와의 싸움은 이어졌다. 377년에는 백제군 3만이 다시 평양성으로 쳐들어왔다.
384년 겨울, 소수림왕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어 아우 이련(고국양왕)이 왕위를 이었다.
이련의 아들 담덕이,
훗날의 광개토대왕이다.
다음 이야기는 평양성을 친 백제의 왕, 근초고왕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