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가 선 마을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동해 바닷가의 작은 나라 옥저와 동예에는 큰 임금이 없이, 마을마다 우두머리가 사람들을 이끌었다. 옥저 사람들은 이웃의 큰 나라 고구려에 소금과 생선을 져 날라야 했고, 동예 사람들은 시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등장인물
마한 강가 마을의 아이
나무로 새를 깎는다
구슬 목걸이를 아낀다
지내는 사람
우두머리
쇠를 싣고 온 사람
고조선의 준왕이 바다를 건너 닿았다는 남쪽 땅, ‘한(韓)’.
서쪽에는 마한, 동쪽에는 진한과 변한.
작은 나라 일흔여덟이
어깨를 맞대고 사는 땅이었다.
솔이나는 솔이. 마한의 쉰네 나라 가운데 한 나라, 어느 강가 마을에 산다.
몰아 와라!
솔이우리 집은 무덤처럼 봉긋한 흙집이다. 문은 지붕 꼭대기에 나 있다.
솔이우리 마을 닭은 꼬리가 다섯 자도 넘는다.
꼬리만 길어 가지고!
솔이우리 마을 어귀에는 나무 새를 얹은 장대들이 서 있다. 오빠 마루는 그 아래에서 곧잘 새를 깎았다.
또 새 깎아?
올릴 거야.
날아가잖아.
하늘에 전해 달라고.
그해 봄, 쇳덩이를 가득 실은 배 한 척이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변한 쇠요!
사람들은 쌀과 베를 들고 나와 쇠와 바꾸었다.
쇠 몇 덩이요?
쇠가 곧 돈이라오!
쇠를 한 아름 주지!
우리 집 보물이에요.
마한 사람들은 금이나 은보다 구슬을 보물로 여겼다.
쇠가 나지.
예도 왜도 사 가고,
두 군에도 보낸다오.
본 적 있느냐?
탄단다.
5월, 사람들은 물을 댄 논에 볍씨를 뿌렸다.
봇도랑 물을 아껴야겠다.
씨뿌리기를 마치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사람들은 무리 지어 밤낮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술을 마셨다.
솔이야!
높게!
수십 명이 줄지어 땅을 밟으며, 몸을 굽혔다 폈다 손발을 맞추었다.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았다. 윗마을 사람들이 봇도랑을 막아, 물을 제 논으로 돌렸다.
우리 논은 다 말라요!
살고 봐야지!
저놈을 잡아라!
그러려던 게…
소도로 달려!
멈춰!
그곳은 소도.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기는 곳이었다.
도망한 사람이 소도에 들어가면, 아무도 그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머무는 땅이다.
내어 줄 수 없다.
저놈을 내주시오!
나도 어쩔 수 없네.
나라를 이끄는 이는 신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이는 천군. 두 사람은 따로 있었다.
솔이그날 밤, 나는 주먹밥을 싸 들고 몰래 소도 어귀로 갔다.
깨어났대?
쓰러진 사내의 집에서는 값을 치르라고 했다.
다시 꿰면 그만이지.
하나뿐이다.
다행히 쓰러졌던 사내는 깨어났다. 신지가 두 집안 사이에 서서 다툼을 풀었다.
물길은 두 마을이 나눠 쓰고.
며칠 뒤 새벽, 마루는 돌아가는 쇠장수의 배를 타고 변한으로 떠났다. 쇠를 벌어 어머니의 구슬을 다시 채워 드리겠다고 했다.
꼭 돌아올게!
마저 깎아 놓을게!
배는 강을 내려가 바다로 나가,
남쪽 바닷가를 따라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나아갔다.
쇠가 나는 땅, 변한으로.
변한의 쇠를 만드는 마을. 마루는 날마다 가죽 풀무를 눌러 가마에 바람을 넣었다.
불이 하얘질 때까지!
가을이 오자, 대장장이는 마루에게 쇠 몇 덩이를 품삯으로 주었다.
장터에선 돈 노릇을 하지.
살 수 있을까요?
솔이오빠가 떠난 뒤, 나는 날마다 오빠가 깎다 만 새를 깎았다.
10월, 추수가 끝났다.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이 솔이의 새를 얹은 새 장대를 세웠다.
오빠가 오는 쪽!
농사일을 모두 마친 10월, 사람들은 다시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5월처럼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때, 동쪽 길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새로 꿰어 왔어요.
돌아왔구나.
하늘에 전해 달라고.
솟대 위의 나무 새들은, 오늘도 하늘을 본다.
그 무렵, 한(韓) 땅의 작은 나라들 가운데 몇몇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마한의 백제국, 진한의 사로국, 변한의 구야국.
훗날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로
자라날 나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