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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바닷가 작은 나라들
제12화

바닷가 작은 나라들

옥저와 동예 · 1~3세기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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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서기 42년 구지봉.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금합이 내려왔고, 그 속 여섯 알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중 김수로가 가야를 세웠고, 바다를 건너온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다. 가야는 철의 나라로 자라났다.

등장인물

너울옥저의 소금 굽는 집 아들.
이 이야기의 주인공
갈매너울의 누이동생.
열 살에 집을 떠난다
할머니바다 저편 이야기를
아는 집안 어른
아버지소금을 굽고
공물을 져 나른다
박달동예의 사냥꾼 소년.
박달나무 활을 멘다
고구려 대가옥저의 세금을
거두는 고구려 귀족

한반도 북쪽, 높은 개마대산 너머 동해 바닷가에

큰 임금 없이 마을마다 우두머리가 다스리는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옥저와 동예.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56년 고구려 태조왕이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

옥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기름진 땅에서, 사람들은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었다.

너울소금 굽는 집 아들, 열두 살갈매너울의 누이동생, 열 살할머니
너울아버지, 이 소금 다 우리 거예요?
아버지…고구려에 바칠 몫부터 채워야지.

옥저에는 소와 말이 드물었다. 말발굽 소리가 나면, 고구려 사람들이 온 것이었다.

너울고구려 사람들이다…
고구려 대가옥저의 세금을 거두는 고구려 귀족

작은 나라 옥저는 고구려에 매여 있었다. 고구려는 옥저의 우두머리를 ‘사자’로 삼고, 대가를 보내 세금을 거두었다.

마을 우두머리고구려가 ‘사자’로 삼은 옥저 사람
고구려 대가베와 생선, 소금, 미역까지 남김없이 내놓아라!
우두머리…예. 모두 거두어 바치겠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등에 지고, 천 리 길을 걸어 고구려까지 날랐다.

너울아버지, 꼭 돌아오세요!
갈매천 리가… 얼마나 멀어?

옥저에는 이런 풍습이 있었다.

딸이 열 살쯤 되면, 훗날 며느리로 삼기로 약속한 집에서 데려가 길렀다. 다 자라면 다시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그해 가을,
열 살 갈매가 집을 떠나는 날이 왔다.

건넛마을 사람들갈매를 데려가 기를 집어머니
갈매오빠…
나 가기 싫어.
너울네 이름 닮은 갈매기야.
보고 싶으면, 이걸 봐.
갈매오빠—
너울갈매야—!

갈매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건넛마을까지는 반나절 길. 하지만 열 살 아이에게는 바다 건너만큼 먼 길이었다.

그 집에서 갈매는 물을 긷고, 생선을 말리고, 곡식을 찧었다.

그 집 할머니손이 느리구나.
해 지기 전에 끝내라.
갈매…네.
갈매할머니… 오빠… 다들 잘 있어?
너울보고 싶으면, 이걸 봐.

그해 겨울밤, 할머니는 너울에게 바다 저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옛날 우리 어부가
바람에 떠밀려,
수십 날을 흘러갔더란다.
너울그래서요?
할머니동쪽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사람들이 살더래.
바다 한가운데엔 여자들만 사는 나라도 있다더구나.

옥저 노인들이 전하던 바다 저편 이야기는, 훗날 『삼국지』에도 실렸다.

할머니할미는 이제 조상님들 곁으로 간다.
우리 식구는 죽어서도 한 곽에 모인단다.
갈매가 돌아오면, 할미한테 인사하러 오라 하렴.

그 겨울이 다 가기 전,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옥저 사람들은 죽은 이를 먼저 흙으로 살짝 덮어, 임시로 묻어 두었다.

살이 다 썩어 없어지면, 뼈를 거두어 집안의 큰 나무 곽(덧널)에 모셨다.

너울할머니, 조금만 여기 계세요.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할머니를 곽으로 모실 날이 왔다.

옥저에서는 죽은 사람 수만큼, 나무를 깎아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새겼다.

아버지할머니 모습을 꼭 닮게 새겨라.
너울지팡이도 새겨 드릴래요.
늘 짚으시던 거.

온 집안이 함께 쓰는 커다란 나무 곽. 길이가 10여 장이나 되고, 한쪽 끝에 문을 냈다.

너울할머니, 이제 조상님들 곁으로 모실게요.

곽 안에는 먼저 떠난 조상들의 나무 모습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할머니우리 식구는 죽어서도 한 곽에 모인단다.

질솥에 쌀을 담아, 곽의 문 곁에 매달았다.

너울할머니, 배고프지 마세요.

세 해가 흘렀다. 너울은 열다섯 살이 되었다.

그해 가을, 너울은 아버지를 따라
소금을 지고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개마대산옥저북옥저동예국내성고구려낙랑군↑ 부여↗ 읍루서해동해공물을 진 천 리 길너울이 걸은바닷길나라의 경계는 대략이며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또 하나의 작은 나라 동예가 있었다.

동예에는 키가 작아, 타고서 과일나무 밑으로도 지나갈 수 있는 말이 났다. ‘과하마’였다.

박달동예의 사냥꾼 소년
박달비켜라, 과하마 나가신다!
너울말이… 나무 밑으로 지나가!

동예 사람들은 삼베를 짜고, 누에를 쳐서 솜을 얻었다.

박달이게 박달나무로 만든 활, 단궁이야.
낙랑에서 이름난 단궁이 다 우리 땅에서 나.
너울우리 옥저 소금이랑 바꿀래?
박달안 돼, 너울!
그 내는 건너면 안 돼!

동예에서는 산과 내마다 마을의 몫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넘나들 수 없었다.

이웃 마을 사내멈춰라! 이 산은 우리 마을 몫이다!

마을끼리 경계를 넘으면 노비나 소, 말로 갚게 했다. 이것을 ‘책화’라 했다.

이웃 마을 삼로남의 산에 들었으니, 책화를 물어야 하오.
박달손님을 데려간 건 저예요.
제 말을 드릴게요.
너울미안해… 나 때문에.
박달경계는 경계야. 그래야 마을끼리 싸우지 않아.

시월이 되자, 동예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잔치,
‘무천(舞天)’이었다.

박달하늘에 춤을 바친대서 ‘무천’이야!
저 산의 범님께도 제사를 올려. 범은 우리 신이거든.
너울네 말 대신이야. 내가 깎았어.
박달하하, 이 녀석도 과일나무 밑으로 지나가겠네!

동예 사람들은 새벽에 별자리를 살펴, 한 해 농사가 풍년일지 흉년일지 미리 점쳤다.

동예의 노인저 별을 보니, 내년엔 풍년이로구나.
너울…갈매도 저 별을 보고 있을까.

너울은 박달과 헤어져 옥저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여러 해가 흘렀다.

어느 봄날, 바닷가 길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갈매오빠—!
갈매어른이 되어 돌아온 누이
너울갈매야!

갈매의 손에는, 닳고 닳은 나무 갈매기가 들려 있었다.

너울보고 싶으면, 이걸 봐.

다 자란 딸이 돌아오면, 친정은 그 집에 돈을 요구했다. 돈을 다 치르면 딸은 다시 그 집으로 갔다.

아버지…며칠만이라도, 딸과 함께 지내게 해 주시오.
그 집 어른그러시오.
돈은 여기 있소.
갈매할머니, 갈매 왔어요.
할머니갈매가 돌아오면, 할미한테 인사하러 오라 하렴.

바다는 오늘도 소금을 내주었고, 사람들은 오늘도 그것을 지고 고개를 넘었다.

3세기 중엽, 위나라 군대가 고구려 왕을 쫓아 이 바닷가까지 와서 옥저의 마을들을 깨뜨렸다.

그때 동쪽 큰 바다까지 온 이들이 여러 나라를 두루 살피고 그 풍속을 적었다고, 『삼국지』는 전한다.

옥저와 동예는 끝내 고구려에 들어갔다.
바닷가 사람들의 살림은,
그렇게 기록으로 남았다.

제12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濊)’ 조의 첫머리『삼국지』 ‘예(濊)’ 조의 첫머리 · 송나라 판본

    『삼국지』가 전하는 바닷가 나라들

    3세기 후반 진수가 쓴 중국 역사책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동옥저와 예(동예)의 이야기가 따로 실려 있어요. 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의 큰 바닷가에 5천 호, 동예는 그 남쪽에 2만 호가 살았고, 두 나라 모두 큰 임금 없이 읍락마다 우두머리가 다스렸대요. 동이전 머리말은 고구려를 치러 간 위나라 군대가 옥저를 지나 동쪽 큰 바다에 이르면서 여러 나라의 풍속을 살펴 적었다고 해요. 이 화의 너울·갈매·박달과 그 식구들은 기록에 없는, 상상으로 그린 인물이에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2. 국내성 성벽 모서리고구려의 도읍 국내성 성벽 (중국 지안)

    고구려에 바친 소금과 생선

    『삼국사기』는 서기 56년 고구려 태조왕이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고 전해요. 『삼국지』에 따르면 고구려는 옥저의 대인을 ‘사자’로 삼아 다스리게 하고, ‘대가’에게 세금을 거두게 했어요. 옥저 사람들은 맥포라는 베와 생선, 소금, 해산물을 천 리 길을 져 날랐대요. 244~246년 무렵 위나라 관구검의 군대가 고구려를 쳤을 때는, 옥저로 달아난 고구려 왕을 쫓아온 위군이 옥저의 읍락을 모두 깨뜨렸다고 해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삼국지』 위서 동이전
  3. 열 살에 집을 떠난 아이들

    옥저의 혼인 풍습은 『삼국지』 본문이 아니라, 5세기에 배송지가 『삼국지』에 단 주석이 끌어온 『위략』에 실려 있어요. 여자아이가 열 살쯤 되면 혼인을 약속하고, 신랑 집에서 데려가 훗날 며느리로 삼으려고 길렀어요. 어른이 되면 친정에 돌려보냈고, 친정이 돈을 요구해 돈을 다 치르면 다시 신랑 집으로 갔대요. 오늘날 ‘민며느리제’라고 불러요. 이 화에서는 그 풍습을 집을 떠나는 아이와 가족의 그리움으로만 그렸어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
  4. 온 집안이 한 곽에

    『삼국지』와 『후한서』는 옥저 사람들이 길이 10여 장의 큰 나무 곽을 만들고 한쪽 끝에 문을 냈다고 적었어요. 한 장(丈)이 2.4미터쯤이었으니 20미터가 넘는 길이예요. 사람이 죽으면 먼저 흙으로 형체만 덮일 만큼 임시로 묻었다가, 살이 다 썩으면 뼈를 거두어 곽에 넣었어요. 온 집안이 한 곽을 썼고, 죽은 사람 수만큼 나무에 산 모습을 새겼으며, 질솥에 쌀을 담아 곽의 문 곁에 매달아 두었대요.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장례를 치르는 것을 ‘세골장’이라고 해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 『후한서』 동이열전
  5. 책화와 무천, 그리고 범

    동예 사람들은 산과 내를 소중히 여겨, 산과 내마다 몫을 나누고 함부로 넘나들지 않았어요. 다른 읍락을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갚게 했는데, 이를 ‘책화’라 했어요. 해마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무천’을 열었고, 범을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냈대요. 새벽에 별자리를 보고 그해 풍흉을 점쳤고, 같은 성끼리는 혼인하지 않았으며, 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살던 집을 버리고 새집을 지었다고 해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6. 단궁·과하마·반어피

    『삼국지』는 ‘낙랑의 단궁’이 동예 땅에서 난다고 적었어요. 박달나무로 만든 활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바다에서는 반어피가, 땅에서는 무늬 있는 표범이 났고, 과하마는 후한 환제 때 중국에 바쳤대요. 배송지는 주석에서 과하마가 키가 3척이라 타고서 과일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풀이했어요. 반어피는 바다표범이나 물범 가죽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
  7. 철(凸)자형·여(呂)자형 집터

    강원 동해안에서는 출입구가 앞으로 튀어나온 원삼국 시대 집터가 많이 나와요. 위에서 보면 ‘凸’자나 ‘呂’자를 닮아 철자형·여자형 집터라고 불러요. 강릉 안인리 유적에서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 무렵의 집터 33채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여자형이 13채, 철자형이 14채였어요. 동예가 있던 곳이라, 이런 집을 동예 사람들의 살림과 이어 보는 견해가 많아요.

    강릉 안인리 유적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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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 솟대가 선 마을

한반도 남쪽, 일흔여덟 작은 나라가 모인 땅 삼한.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매단 신성한 곳 ‘소도’로 쫓기던 사람이 뛰어들자, 뒤쫓던 이들이 그 앞에서 멈춰 선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