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598년과 612년, 수나라는 거듭 대군을 보내 고구려를 쳤다. 612년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으로 적진을 살피고, 적을 깊숙이 끌어들여 지치게 한 뒤, 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그 뒤로도 두 번 더 쳐들어왔다 물러난 수나라는, 618년 무너졌다.
등장인물
칼 다섯 자루를 찬다
당과 화친하려 한다
642년 왕이 된다
상상 인물
상상 인물
당나라 사신
618년, 영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이복동생 건무가 왕위에 올랐다. 영류왕이다.
끝났다.
쉬게 하리라.
같은 해,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무너지고 당나라가 섰다.
622년, 당나라 고조가 글을 보내, 수나라 때의 싸움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서로 돌려보내자고 했다.
그곳의 우리 사람들도 놓아 보내시오.
모두 찾아 돌려보내라.
고구려는 나라 안의 중국 사람들을 모두 찾아 돌려보냈다. 그 수가 만 명이 넘었다.
이제 고향에 가오.
당 고조는 크게 기뻐했다.
624년, 당나라 도사가 천존상을 모시고 와서 『노자』를 강의했다. 왕과 나라 사람들이 들었다.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니…
지키는 길이 있다면…
그 뒤 영류왕은, 당 태종이 돌궐의 가한을 사로잡은 것을 축하하며 고구려 땅을 그린 지도 ‘봉역도’를 바쳤다.
631년, 당나라 사신이
옛 싸움터에 나타났다.
당나라는 장손사를 보내, 수나라 군사들의 뼈를 거두어 묻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넋을 위로하라.
허물어라!
경관은 수와 싸우던 때, 이긴 고구려가 적군의 주검을 모아 흙으로 덮어 쌓은 언덕이었다.
왜 허물어요?
수나라가 여기서 진 것을.
허물었사옵니다!
반드시 온다.
긴 성을 쌓으라!
영류왕은 무리를 일으켜 장성을 쌓게 했다.
동북쪽 부여성에서 바다에 이르는 천여 리. 다 쌓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삼국유사』는 이때 ‘남자는 성을 쌓고, 여자는 밭을 갈았다’고 적었다.
저도 갈래요!
밭을 갈아라.
다녀오세요.
고을마다 많은 사람이 서쪽 변경으로 떠났다.
흙을 지게로 져 나르고, 나무 틀에 부어 달굿대로 한 켜 한 켜 다졌다.
다져라!
해가 가고 또 갔다. 장성은 조금씩 들판을 따라 길어졌다.
조밥을 싸 주셨어요.
컸구나.
640년, 영류왕은 세자 환권을 당나라에 보내고, 귀족 자제들을 당의 국학에 들여보내 배우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듬해, 당나라에서
한 사신이 왔다.
641년, 당나라 사신 진대덕이 고구려에 들어왔다. 그는 이르는 성마다 지키는 관리에게 비단을 듬뿍 안겼다.
경치 좋은 데가 있으면 보고 싶소.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관리들은 기꺼이 그를 이끌고,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길을 다 보여 주다니…
보러 온 걸까?
그렇게 진대덕은 고구려의 길과 성, 산과 강을 구석구석 알아냈다.
수나라 때 싸우러 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중국 사람들을 만나면, 진대덕은 고향 친척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잘 지내고 있소.
살아 계시다고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가 가는 곳마다 남녀가 길 양쪽에 늘어서 그를 구경했다.
평양에 이른 진대덕을, 왕은 군사를 성대하게 늘어세우고 맞았다.
깃발이 몇 개라.
그가 나라의 속사정을 엿보러 온 줄을, 고구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진대덕은 돌아가 당 태종에게, 고구려가 고창이 망했다는 소식에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고 아뢰었다.
기울여 막으러 오겠지.
어렵지 않다.
다만 산동(중국 동쪽)의 고을들이 아직 피폐한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으니,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642년 정월, 영류왕은 동부의 대인 연개소문에게 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게 했다.
장성 공사터에
새 감독이 왔다.
그의 아버지는 동부의 대인으로 대대로를 지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대인의 자리를 이었다.
서둘러라!
일꾼들 사이에는 새 감독을 두고 이런 말이 돌았다.
사람이래…
깊은 못 말이야.
『삼국사기』는 그가 스스로 물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홀렸다고 적었다.
그보다 앞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귀족들은 그의 성질이 잔인하고 포악하다며 자리를 잇지 못하게 했다.
해 주십시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딱하게 여겨, 허락했다.
성이 늦으면, 당이 온다.
『삼국사기』는 그가 몸에 칼 다섯 자루를 차서, 곁의 사람들이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다고 적었다.
『삼국사기』는 그가 자리를 이은 뒤 흉포하게 굴자, 대인들과 왕이 몰래 그를 없애기로 의논했다고 적었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모르게 하시오.
그러나 이 일은 새어 나갔다.
642년 10월, 연개소문은 군사를 사열하는 것처럼 꾸며 자기 부의 군사를 모두 모았다.
오늘 우리 군사를 보여 드리리다.
그리고 평양성 남쪽에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 대신들을 불러 함께 보게 했다.
대신들이 다 모이자, 연개소문의 군사들이 그들을 모두 죽였다. 백 명이 넘었다.
그 길로 그는 궁궐로 말을 달려 들어갔다.
영류왕은
그날 목숨을 잃었다.
영류왕이 왕위에 오른 지 스물다섯 해째였다.
소식은 바람처럼, 서쪽 장성 공사터까지 퍼졌다.
큰일이 났다!
돌아가셨대요.
입에 올리지 마라.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아우 대양왕의 아들 장을 왕으로 세웠다. 보장왕이다.
이 막리지가 맡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막리지가 되었다. 당나라의 병부상서와 중서령을 합친 것 같은 벼슬이었다.
이제 그는 멀고 가까운 곳에 명령을 내리며, 나랏일을 제 마음대로 했다.
물렀거라!
『삼국사기』는 그가 말을 오르내릴 때면 귀족이나 장수를 땅에 엎드리게 해 그 등을 밟았다고 적었다.
643년 3월, 연개소문이 보장왕에게 아뢰었다.
세 가르침은 솥의 세 발과 같아,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三敎譬如鼎足 闕一不可 — 『삼국사기』 보장왕 2년
당에 사신을 보내 도교를 구하소서.
당 태종은 도사 숙달 등 여덟 명과 노자의 『도덕경』을 보내왔다. 왕은 기뻐하며 절을 내주어 그들을 머물게 했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삼국유사』는 반룡사의 스님 보덕이 여러 번 말렸지만, 왕이 듣지 않았다고 전한다.
앞서 642년 11월, 당 태종은 영류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궐 동산에서 애도했다.
제멋대로 하니, 참을 수 없다.
기다렸다 치셔도 늦지 않습니다.
태종은 사신을 보내 보장왕을 ‘고구려 왕’으로 책봉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고구려가 교만해지기를.
우리를 지켜 줄까요?
우리가 쌓았으니.
서쪽 하늘 아래, 성은 아직 다 쌓이지 않았다.
누구는 그를 임금을 죽인 역적이라 했고, 누구는 당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이라 했다.
장성이 다 쌓이기도 전,
645년, 당 태종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