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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첫 여왕
제33화

첫 여왕

선덕여왕 · 6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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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와 함께 보면 더 생생해요.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이야기

지난 화에서는 가야의 마지막을 보았다. 가야의 악사 우륵은 가실왕이 만든 열두 줄 가야금을 안고 신라 진흥왕에게로 갔고, 562년 대가야는 신라에 무너졌다. 우륵의 노래는 다섯 곡으로 다듬어져 신라의 ‘대악’이 되었다.

등장인물

선덕여왕신라의 첫 여왕.
이름은 덕만
김춘추여왕의 조카.
뒷날의 태종 무열왕
김유신금관가야 왕족의 후손.
신라의 장수
알천신라의 장군
자장당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승려
비담귀족 회의를 이끄는
상대등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무너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신라의 서울 서라벌.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대신 영리한 맏딸이 있었다.

진평왕신라의 왕덕만진평왕의 맏딸
진평왕당나라에서 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란다.
덕만꽃은 고운데…
향기는 없겠어요.
진평왕허허,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덕만꽃만 그리고,
나비는 그리지 않았잖아요.
향기로운 꽃에는
벌과 나비가 모이니까요.

씨앗을 심어 꽃이 피자, 정말로 향기가 없었다.

진평왕허허, 정말 향기가 없구나!

『삼국사기』는 덕만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이와 같았다’고 적었다.

632년 정월, 진평왕이 아들 없이 세상을 떠났다.

선덕여왕이름은 덕만

나라 사람들은 맏딸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이름을 올렸다. 신라의 첫 여왕이었다.

그해 10월, 여왕은 관리들을 보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을 돌보게 했다.

관리나라님께서 내리신
곡식이오!
할머니아이고… 우리 같은
늙은이까지 챙기시다니.

『삼국사기』는 여왕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했다고 적었다.

636년 여름 5월, 궁궐 서쪽의 연못 옥문지에 두꺼비가 떼로 모여들었다.

관리전하! 두꺼비들이
떼로 몰려들었사옵니다!
선덕여왕두꺼비의 성난 눈은
병사의 모습이오.
서남쪽 변경 ‘옥문곡’에
이웃 나라 군사가
숨어든 게 아니겠소?

여왕은 곧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군사를 주어 그곳을 뒤지게 했다.

옥문곡에는 정말로 백제 장군 우소가 갑옷 입은 군사 500명과 숨어 있었다. 독산성을 치려던 참이었다.

알천신라의 장군
알천백제군이다!
덮쳐라!

알천은 그들을 덮쳐 모두 무찔렀다.

여왕이 다스리는 동안 서라벌에는 분황사(634)와 영묘사(635)가 섰다.

『삼국유사』는 이 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유사』는 여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선덕여왕나는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죽을 것이오.
그때 나를
도리천에 묻어 주오.
신하도리천이…
어디이옵니까?
선덕여왕낭산 남쪽이오.

김춘추. 여왕의 조카로, 『삼국사기』는 그가 풍채가 빼어나고 어려서부터 세상을 구할 뜻을 품었다고 적었다.

김유신. 금관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의 증손자로, 열다섯에 화랑이 되었고 629년 낭비성 싸움에서 이름을 떨쳤다.

여왕 곁을 지킨 두 사람이다. 김춘추의 아내는 김유신의 누이였다.

642년 7월, 백제 의자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와, 신라 서쪽의 성 40여 곳을 빼앗았다.

8월,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무너뜨렸다.

전령전하! 대야성이…
떨어졌사옵니다!
성주 품석 공과…
부인께서도…

대야성 성주 품석의 아내 고타소는, 김춘추의 딸이었다.

김춘추신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를 청해
백제에 원한을 갚겠사옵니다.
선덕여왕…다녀오시오.

그해 겨울, 김춘추는 고구려로 떠났다.

고구려 왕은 ‘죽령 일대는 본래 고구려 땅이니 먼저 돌려 달라’고 했다.

김춘추가 거절하자, 왕은 그를 별관에 가두었다.

김유신이 결사대를 이끌고 구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고구려 왕은 김춘추를 놓아 보냈다.

643년 3월, 7년 동안 당에서 불법을 공부한 승려 자장이 돌아왔다. 『삼국유사』는 그가 당의 태화지 못가에서 신인(神人)을 만났다고 전한다.

자장당에서 돌아온 승려
자장‘너희 나라는 여자가 왕이라,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어
이웃이 넘본다’ 하였사옵니다.
‘황룡사에 9층 탑을 세우면
이웃이 항복하리라’
하였사옵니다.

643년 9월, 여왕은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당 태종은 세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당 태종하나, 요동을 쳐서
너희가 한 해쯤 숨 돌리게 하거나,
둘, 붉은 옷과 깃발
수천을 줄 테니
우리 군사인 척하거나—
당 태종셋, 수많은 배에 군사를 실어
백제를 곧장 치마. 다만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업신여김을 받으니,
내 친족 하나를 보내 왕으로 삼고
군사로 지켜 주마.
어느 쪽을 따르겠느냐?
사신……

사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 태종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선덕여왕…이 나라는,
우리 손으로 지키겠소.

645년 3월, 싸움터에서 돌아온 김유신에게 또 급보가 닿았다.

선덕여왕나라의 존망이
공 한 몸에 달렸소.
수고를 꺼리지 말고,
가서 막아 주시오!

김유신은 이번에도 집에 들르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곧장 서쪽으로 떠났다.

아버지—!

집 앞을 지날 때 식구들이 문밖에 나와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쉰 걸음쯤 가서, 김유신은 말을 멈추고 집에서 물을 떠 오게 했다.

김유신우리 집 물맛은…
아직 옛 맛 그대로구나.
군사대장군도 저러시는데,
우리가 어찌 서러워하랴!

백제군은 신라군의 기세를 보고,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물러갔다.

645년 3월, 여왕은 자장의 청에 따라 황룡사에 9층 나무탑을 세우게 했다.

아비지백제의 장인용춘김춘추의 아버지

백제에서 이름난 장인 아비지를 모셔 오고, 이찬 용춘이 장인 200명을 이끌었다.

『삼국유사』는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가운데 기둥을 세우던 날, 아비지는 고향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고 손을 놓았다.

아비지내 나라 백제가…
망한다고?

그러자 땅이 흔들리며 늙은 스님과 장사가 나타나 기둥을 세우고 사라졌다. 아비지는 마음을 고쳐먹고 탑을 끝까지 지었다고 한다.

아홉 층 나무탑이 서라벌 하늘 높이 솟았다.

『삼국유사』가 옮긴 옛 기록은, 아홉 층이 이웃의 아홉 나라를 누른다고 했다.

645년 11월, 여왕은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비담새 상대등

상대등은 귀족들의 회의를 이끄는, 신하 가운데 으뜸가는 자리였다.

647년 정월,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군사를 일으켰다.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

女主不能善理 — 『삼국사기』

비담의 무리는 명활성에, 여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쳤다.

비담월성을 쳐라!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달 8일,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삼국유사』는 여왕이 미리 말해 둔 바로 그날이었다고 전한다.

선덕여왕나를 도리천에 묻어 주오.

왕위는 여왕의 사촌 승만이 이었다. 진덕여왕이다.

그러나 명활성의 반란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다.

싸움이 열흘째 이어지던 어느 한밤중, 큰 별 하나가 월성으로 떨어졌다.

비담별이 떨어진 곳에는
반드시 피가 흐른다 했다!
여왕이 질 징조다!

함성이 하늘과 땅을 흔들자, 월성 안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진덕여왕선덕여왕의 사촌 · 새 왕
김유신길흉은 정해진 게 아니라,
사람이 부르는 것이옵니다.
덕이 요사함을 이기면,
별의 변고는 두렵지 않사옵니다.

김유신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큰 연에 실었다.

김유신바람이 분다.
띄워라!
선덕여왕나를 도리천에 묻어 주오.

불붙은 허수아비는 바람을 타고 높이높이 올라갔다. 마치 떨어진 별이 하늘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튿날, 김유신은 사람들을 시켜 길마다 이 말을 퍼뜨리게 했다.

마을 사람어젯밤 떨어진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오!
반란군…하늘이 여왕 편이란
말인가?

김유신이 장수와 군사들을 북돋워 들이쳤다.

김유신역적을 쳐라!

비담의 무리는 무너져 달아났다.

달아난 비담은 뒤쫓아 간 군사들에게 붙잡혔다.

정월 17일, 비담은 처형되었다.
비담과 함께 죄를 입어 처형된 사람이 30명이었다.

여왕은 그 말대로 낭산 남쪽에 묻혔다.

679년, 무덤 아래 기슭에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불경에서 도리천은 사천왕천 바로 위에 있는 하늘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여왕이 말한 ‘도리천’이 바로 그 자리였음을 알았다고 한다.

열여섯 해 동안 나라를 지킨 첫 여왕.

그 곁의 두 사람, 김춘추와 김유신의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제33화 끝

역사 노트

이야기 속 장면은 이런 기록과 유적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1. 경주 사천왕사 터경주 사천왕사 터 · 낭산(도리천) 아래

    여왕이 미리 안 세 가지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알아챈 세 가지(지기삼사)를 전해요. 당 태종이 보낸 붉은빛·자줏빛·흰빛 모란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을 안 일, 겨울에 영묘사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사나흘 울자 서쪽 여근곡에 숨은 백제군 500명(뒤따른 1,200명도)을 찾아낸 일, 그리고 자기가 죽을 날과 묻힐 곳 ‘도리천’을 미리 말한 일이에요. 『삼국유사』는 ‘10여 년 뒤’ 문무왕이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를 세웠다고 했지만, 『삼국사기』에는 679년에 완성되었다고 나와요. 『삼국사기』는 모란 그림을 진평왕 때 공주 덕만이 알아본 일로, 두꺼비 일을 636년 여름 궁궐 서쪽 옥문지와 ‘옥문곡’의 일로 적었는데, 이 화는 『삼국사기』 쪽을 따랐어요. 다만 그림 속 세 빛깔 모란은 『삼국유사』에서 빌려 왔어요. 지금 경주 건천읍 신평리의 골짜기를 여근곡이라 불러요.

    『삼국유사』 기이 선덕왕 지기삼사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2. 경주 첨성대경주 첨성대 (국보)

    첨성대

    『삼국유사』는 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짧게 적었어요. 부채꼴로 다듬은 돌을 27단 둥글게 쌓아 올리고, 가운데쯤 남쪽에 네모난 창을 내고, 꼭대기에 ‘井’ 자 모양으로 긴 돌을 얹었어요. 높이는 9미터 남짓이에요. 오랫동안 별을 살피던 천문대로 알려졌지만, 평지에 있고 오르내리기 불편하다는 점 등을 들어 제단, 불교와 관련된 상징물, 하늘의 뜻을 점치던 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쓰임새는 지금도 의견이 갈려요.

    『삼국유사』 기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황룡사 9층 목탑 10분의 1 모형황룡사 9층 목탑을 10분의 1로 줄여 다시 만든 모형

    황룡사 9층 목탑

    『삼국유사』에 따르면 636년 당에 간 자장이 태화지 가에서 만난 신인에게서 ‘황룡사에 9층 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한다’는 말을 듣고 643년에 돌아와 탑을 세우자고 청했어요. 백제 장인 아비지가 와서 이찬 용춘(김춘추의 아버지)과 장인 200명이 지었고, 기둥을 세우던 날의 꿈 이야기는 전설이에요. 『삼국사기』는 645년 3월에 탑을 짓기 시작했다고, 『삼국유사』는 645년에 처음 완성되었다고 적었어요. 높이는 225자로, 자의 길이에 따라 약 68~80미터로 짐작해요. 1238년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 절과 함께 불타, 지금은 경주 황룡사 터에 주춧돌만 남았어요.

    『삼국유사』 탑상 황룡사 9층탑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국보)

    분황사와 영묘사

    여왕은 634년 분황사, 635년 영묘사를 세웠어요.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안산암을 작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으로, 지금은 3층까지 남아 있고 높이가 약 9.3미터예요(국보). 지금 남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히지만, 여러 번 고쳐 쌓아 처음 모습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자장은 당에서 돌아와 이 절에 머물렀어요. 영묘사는 남아 있지 않은데, ‘靈廟之寺’ 글자 기와가 나온 경주 흥륜사지를 영묘사 터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어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경주 명활성경주 명활성 · 비담의 군사가 머문 성

    비담의 난, 그리고 별과 연

    647년 정월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여자 임금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며 군사를 일으켜, 명활성과 월성에서 열흘 동안 맞섰어요. 별이 떨어지자 김유신이 불붙인 허수아비를 연에 실어 띄우고 ‘떨어진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말을 퍼뜨린 일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나와요(흰 말을 잡아 제사를 지낸 일도 있지만 그리지 않았어요). 『삼국사기』 본기는 여왕이 정월 8일에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진덕여왕이 17일에 비담을 처형했다고 적었어요. 그래서 별 이야기에 나오는 겁먹은 ‘대왕’이 누구였는지, 난이 선덕여왕을 겨눈 것인지 다음 왕을 세우는 일을 겨눈 것인지를 두고 학자들의 의견이 갈려요. 이 화는 본기의 차례를 따라 여왕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그렸어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상 ·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 『삼국사기』 진덕왕
  6. 경주 선덕여왕릉경주 선덕여왕릉 · 낭산

    신라의 세 여왕

    우리 역사에서 여왕은 신라의 선덕여왕(632~647), 진덕여왕(647~654), 진성여왕(887~897) 세 사람뿐이에요. 『삼국유사』는 ‘성골의 남자가 다 없어져’ 여왕이 섰다고 했고, 『삼국사기』는 나라 사람들이 시조부터 진덕여왕까지를 ‘성골’, 무열왕부터를 ‘진골’이라 불렀다고 적었어요. 여왕을 깎아내린 당 태종의 말은 『삼국사기』에 그대로 실려 있고, 김부식도 ‘여자를 왕위에 앉힌 것은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라는 평을 붙였는데, 이는 그가 살던 12세기 유학자의 눈으로 본 평가예요. 『삼국유사』는 세 빛깔 모란을 세 여왕의 조짐으로 풀었어요.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왕 · 『삼국유사』 왕력·기이
  7. 김춘추와 김유신, 그리고 상상으로 그린 것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이찬 용춘,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 부인이라 여왕의 조카예요. 김유신은 595년에 태어난 금관가야 왕실의 후손이고, 누이 문희(문명 부인)가 김춘추의 아내예요. 642년 고구려 일은 본기(죽령, 결사대 1만)와 김유신 열전(마목현과 죽령, 용사 3천, 60일 약속)이 조금 달라요. 645년 집 앞을 돌아보지 않고 지나간 이야기는 본기와 열전에 모두 있고, 물맛 이야기는 열전에만 있어요. 궁궐과 사람들의 모습, 공주와 왕의 말투, 사신·관리·마을 사람들의 말, 아비지의 모습은 상상이고, 왕과 여왕의 금관은 5~6세기 신라 무덤에서 나온 금관을 본떠 그린 것으로, 이 무렵 실제로 썼는지는 알 수 없어요. 탑은 기록을 바탕으로 그렸어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상 ·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 『삼국유사』 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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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 살수의 물결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612년의 고구려로 간다. 수나라 황제가 백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을 하러 적진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 살수의 물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 출처

이 웹툰의 삽화는 모두 새로 그린 것이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대사는 역사적 사실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상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연대와 해석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을 따랐고,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역사 노트에 밝혀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