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왕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화에서는 가야의 마지막을 보았다. 가야의 악사 우륵은 가실왕이 만든 열두 줄 가야금을 안고 신라 진흥왕에게로 갔고, 562년 대가야는 신라에 무너졌다. 우륵의 노래는 다섯 곡으로 다듬어져 신라의 ‘대악’이 되었다.
등장인물
이름은 덕만
뒷날의 태종 무열왕
신라의 장수
돌아온 승려
상대등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무너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신라의 서울 서라벌.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대신 영리한 맏딸이 있었다.
모란꽃 그림과 꽃씨란다.
향기는 없겠어요.
나비는 그리지 않았잖아요.
벌과 나비가 모이니까요.
씨앗을 심어 꽃이 피자, 정말로 향기가 없었다.
『삼국사기』는 덕만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 이와 같았다’고 적었다.
632년 정월, 진평왕이 아들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은 맏딸 덕만을 왕으로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이름을 올렸다. 신라의 첫 여왕이었다.
그해 10월, 여왕은 관리들을 보내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을 돌보게 했다.
곡식이오!
늙은이까지 챙기시다니.
『삼국사기』는 여왕이 너그럽고 어질며, 총명하고 민첩했다고 적었다.
636년 여름 5월, 궁궐 서쪽의 연못 옥문지에 두꺼비가 떼로 모여들었다.
떼로 몰려들었사옵니다!
병사의 모습이오.
이웃 나라 군사가
숨어든 게 아니겠소?
여왕은 곧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군사를 주어 그곳을 뒤지게 했다.
옥문곡에는 정말로 백제 장군 우소가 갑옷 입은 군사 500명과 숨어 있었다. 독산성을 치려던 참이었다.
덮쳐라!
알천은 그들을 덮쳐 모두 무찔렀다.
여왕이 다스리는 동안 서라벌에는 분황사(634)와 영묘사(635)가 섰다.
『삼국유사』는 이 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유사』는 여왕이 아무 병도 없을 때,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아무 날에 죽을 것이오.
도리천에 묻어 주오.
어디이옵니까?
김춘추. 여왕의 조카로, 『삼국사기』는 그가 풍채가 빼어나고 어려서부터 세상을 구할 뜻을 품었다고 적었다.
김유신. 금관국(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의 증손자로, 열다섯에 화랑이 되었고 629년 낭비성 싸움에서 이름을 떨쳤다.
여왕 곁을 지킨 두 사람이다. 김춘추의 아내는 김유신의 누이였다.
642년 7월, 백제 의자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와, 신라 서쪽의 성 40여 곳을 빼앗았다.
8월,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무너뜨렸다.
떨어졌사옵니다!
부인께서도…
대야성 성주 품석의 아내 고타소는, 김춘추의 딸이었다.
군사를 청해
백제에 원한을 갚겠사옵니다.
그해 겨울, 김춘추는 고구려로 떠났다.
고구려 왕은 ‘죽령 일대는 본래 고구려 땅이니 먼저 돌려 달라’고 했다.
김춘추가 거절하자, 왕은 그를 별관에 가두었다.
김유신이 결사대를 이끌고 구하러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고구려 왕은 김춘추를 놓아 보냈다.
643년 3월, 7년 동안 당에서 불법을 공부한 승려 자장이 돌아왔다. 『삼국유사』는 그가 당의 태화지 못가에서 신인(神人)을 만났다고 전한다.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어
이웃이 넘본다’ 하였사옵니다.
이웃이 항복하리라’
하였사옵니다.
643년 9월, 여왕은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당 태종은 세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너희가 한 해쯤 숨 돌리게 하거나,
수천을 줄 테니
우리 군사인 척하거나—
백제를 곧장 치마. 다만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업신여김을 받으니,
군사로 지켜 주마.
어느 쪽을 따르겠느냐?
사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리 손으로 지키겠소.
645년 3월, 싸움터에서 돌아온 김유신에게 또 급보가 닿았다.
공 한 몸에 달렸소.
가서 막아 주시오!
김유신은 이번에도 집에 들르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곧장 서쪽으로 떠났다.
집 앞을 지날 때 식구들이 문밖에 나와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쉰 걸음쯤 가서, 김유신은 말을 멈추고 집에서 물을 떠 오게 했다.
아직 옛 맛 그대로구나.
우리가 어찌 서러워하랴!
백제군은 신라군의 기세를 보고,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물러갔다.
645년 3월, 여왕은 자장의 청에 따라 황룡사에 9층 나무탑을 세우게 했다.
백제에서 이름난 장인 아비지를 모셔 오고, 이찬 용춘이 장인 200명을 이끌었다.
『삼국유사』는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가운데 기둥을 세우던 날, 아비지는 고향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고 손을 놓았다.
망한다고?
그러자 땅이 흔들리며 늙은 스님과 장사가 나타나 기둥을 세우고 사라졌다. 아비지는 마음을 고쳐먹고 탑을 끝까지 지었다고 한다.
아홉 층 나무탑이 서라벌 하늘 높이 솟았다.
『삼국유사』가 옮긴 옛 기록은, 아홉 층이 이웃의 아홉 나라를 누른다고 했다.
645년 11월, 여왕은 이찬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상대등은 귀족들의 회의를 이끄는, 신하 가운데 으뜸가는 자리였다.
647년 정월,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군사를 일으켰다.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
女主不能善理 — 『삼국사기』
비담의 무리는 명활성에, 여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쳤다.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달 8일,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삼국유사』는 여왕이 미리 말해 둔 바로 그날이었다고 전한다.
왕위는 여왕의 사촌 승만이 이었다. 진덕여왕이다.
그러나 명활성의 반란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다.
싸움이 열흘째 이어지던 어느 한밤중, 큰 별 하나가 월성으로 떨어졌다.
반드시 피가 흐른다 했다!
여왕이 질 징조다!
함성이 하늘과 땅을 흔들자, 월성 안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사람이 부르는 것이옵니다.
별의 변고는 두렵지 않사옵니다.
김유신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큰 연에 실었다.
띄워라!
불붙은 허수아비는 바람을 타고 높이높이 올라갔다. 마치 떨어진 별이 하늘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튿날, 김유신은 사람들을 시켜 길마다 이 말을 퍼뜨리게 했다.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오!
말인가?
김유신이 장수와 군사들을 북돋워 들이쳤다.
비담의 무리는 무너져 달아났다.
달아난 비담은 뒤쫓아 간 군사들에게 붙잡혔다.
정월 17일, 비담은 처형되었다.
비담과 함께 죄를 입어 처형된 사람이 30명이었다.
여왕은 그 말대로 낭산 남쪽에 묻혔다.
679년, 무덤 아래 기슭에 사천왕사가 세워졌다. 불경에서 도리천은 사천왕천 바로 위에 있는 하늘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여왕이 말한 ‘도리천’이 바로 그 자리였음을 알았다고 한다.
열여섯 해 동안 나라를 지킨 첫 여왕.
그 곁의 두 사람, 김춘추와 김유신의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