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왕국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화에서는 신라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562년 열대여섯 살의 화랑 사다함은 대가야를 치는 싸움에서 먼저 성문으로 뛰어들어 흰 깃발을 세웠고, 상으로 받은 포로 300명을 모두 풀어 주었다. 그리고 마흔 해 뒤, 스님 원광에게 다섯 가르침을 받은 귀산과 추항은 아막성 싸움터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등장인물
열두 곡을 지었다
열두 줄 악기를 만들었다
우륵을 불러들였다
배운 신라 사람들
한반도 남쪽 낙동강 유역에는 ‘가야’라 불린 여러 나라가 있었다.
한 임금 아래 하나로 묶인 나라가 아니라, 저마다 왕이 있는 작은 나라들이 어울려 지냈다.
이 이야기는 그 가운데
고령의 대가야에서 시작한다.
고령의 대가야. 이 무렵 가야의 여러 나라를 이끈 나라였다.
산등성이에는 왕들의 큰 무덤이 줄지어 있었고, 강에는 덩이쇠를 실은 배가 오갔다.
가야 땅에서는 쇠가 났다.
배로 날라라!
사람들은 쇠를 두드려 칼과 갑옷, 농기구를 만들고, 납작한 쇳덩이 ‘덩이쇠’도 만들었다. 가야의 덩이쇠는 일찍부터 바다 건너 왜까지 건너갔다.
가야국의 가실왕은 중국의 악기 ‘쟁’을 보았다.
왕은 그 악기를 본떠 새 악기를 만들게 하고, 악사 우륵을 불렀다.
소리라고 어찌 하나이겠느냐.
노래를 지어라.
줄을 열둘로 하였다.
이 악기는 뒷날 ‘가야금’이라 불렸다. 왕은 우륵에게 열두 곡을 짓게 했다.
우륵이 지은 열두 곡의 이름은, 대부분 가야 여러 고을의 이름으로 보인다.
‘상가라도’는 대가야의 도읍을 노래한 곡으로 보인다.
한 악기에서 울리는구나.
우리 고을 노래예요!
세월이 흘렀다.
522년, 가야국의 왕은 신라에 혼인을 청해 신라 이찬 비조부의 누이를 맞았다. 그러나 532년, 남쪽 바닷가의 금관국은 신라에 항복했다.
서쪽의 백제와 동쪽의 신라 사이에서,
가야의 나라들은 흔들렸다.
『삼국사기』는 우륵의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지려 했다’고 적었다.
맞서면 안 되오!
신라로 가시렵니까?
배신자라 할 겁니다…
노래부터 잊히는 법이다.
이 소리만은, 살려야 한다.
우륵은 악기를 안고, 제자 니문과 함께 신라로 갔다.
551년 3월, 신라의 진흥왕은 순행 길에 낭성에 머물다가, 우륵과 니문이 음악을 잘 안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불렀다.
가야의 소리인가.
두 사람은 저마다 새 노래를 지어, 하림궁에서 왕 앞에 나아가 탔다.
왕은 우륵을 국원(지금의 충주)에 머물게 했다. 552년에는 계고·법지·만덕 세 사람을 보내 그 음악을 배우게 했다.
법지는 노래를,
만덕은 춤을 배워라.
『삼국사기』에는 니문이 지은 노래 세 곡, ‘까마귀’·‘쥐’·‘메추라기’의 이름도 전한다.
배워 보시오!
배움을 마치자 왕은 세 사람에게 연주하게 하고는, 후하게 상을 내렸다.
다름이 없구나!
562년 가을 9월, 가야가 신라에 맞서 일어났다.
신라의 진흥왕은 이찬 이사부에게 가야를 치게 하고, 열대여섯 살의 화랑 사다함을 그 부장으로 삼았다.
그날, 대가야의 성 안.
어린 가람은 어느새 손자를 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뭐예요?
사다함이 기병 5천을 이끌고 먼저 달려와, 전단문으로 뛰어들었다.
사다함은 흰 깃발을 세웠다. 성 안 사람들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이어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다다르자, 성 안 사람들은 한꺼번에 모두 항복했다.
대가야가 무너졌다. 가야의 나라들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왕은 공이 으뜸인 사다함에게 가야 사람 300명을 상으로 내렸다. 사다함은 그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자유로운 백성이오.
우리 고을 노래예요!
악사가 있었단다.
대가야가 무너졌답니다!
소리라고 어찌 하나이겠느냐.
열한 곡을 이어받은 계고·법지·만덕은 서로 의논했다.
바르다 하기 어렵소.
줄입시다.
우륵은 이 일을 처음 듣고 노여워했다.
다섯 곡으로 줄였다고!
세 사람은 우륵 앞에서 다섯 곡을 연주했다.
다섯 곡을 다 들은 우륵은,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즐거우면서도 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 할 만하다.
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 — 『삼국사기』 잡지 악
왕 앞에서 연주하여라.
다섯 곡을 들은 진흥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자 간하는 신하가 나섰다.
취할 것이 못 되옵니다!
음악에 무슨 죄가 있겠느냐.
왕은 이 음악을 나라의 큰 음악, ‘대악’으로 삼았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열두 줄의 소리는 남았다.
우륵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충주 남한강 가의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가야는 사라졌지만, 가야금은
천사백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