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오계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지난 화에서는 일곱 살에 왕이 된 신라의 진흥왕을 만났다. 왕은 백제와 손잡고 한강으로 나아갔다가 553년 백제의 한강 하류마저 빼앗았고, 이듬해 관산성 싸움에서 백제의 성왕이 목숨을 잃었다. 왕은 넓힌 땅의 끝마다 비석을 세웠고, 576년 봄에는 빼어난 젊은이들을 뽑아 화랑으로 받들게 했다.
등장인물
내물왕의 7대손
죽음을 함께하기로 했다
배우고 돌아온 스님
무은의 아들
신라의 장군
언제인지 모를 어느 임신년 6월 16일, 신라의 두 젊은이가 돌에 맹세를 새겼다.
돌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충성의 길을 굳게 지켜,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天前誓 … 忠道執持 過失无誓 — 임신서기석
이 이야기는, 그런 맹세를 품었던 신라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562년 가을 9월, 가야가 신라에 맞서 일어났다. 진흥왕은 이찬 이사부에게 가라(대가야)를 치게 했다.
평정하라!
그 무렵 서라벌에는 열대여섯 살의 화랑, 사다함이 있었다.
나도 가겠다!
내물왕의 7대손. 사람들이 청하자 마지못해 화랑이 되었는데, 따르는 무리가 1천 명에 이르렀고 모두 그를 진심으로 따랐다.
보내 주십시오!
하지만 왕은, 사다함이 아직 어리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사다함은 물러서지 않고 거듭, 굳게 청했다.
비장으로 삼겠다!
왕은 마침내 그를 ‘귀당’이라는 부대의 비장(장수를 돕는 장수)으로 삼았다. 사다함을 따르던 무리도 많이 함께 나섰다.
사다함에게는 일찍이 ‘죽음을 함께하는 벗’이 되기로 약속한 벗, 무관랑이 있었다.
우리는 죽음도 함께하는 벗이야.
가라의 경계에 이르자, 사다함은 원수 이사부에게 자기 군사를 이끌고 먼저 들어가겠다고 청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사다함은 기병 5천을 이끌고 앞서 달려, 가라의 성문으로 뛰어들었다.
가라 사람들은 문을 ‘량’이라 했다. 이 성문의 이름은 전단량, 곧 전단문이었다.
사다함은 흰 깃발을 세웠다. 뜻밖에 들이닥친 군사에, 성안 사람들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이어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다다르자, 성안 사람들은 한꺼번에 항복했다.
왕은 공을 따졌다. 사다함의 공이 으뜸이었다.
상으로 내리노라!
사다함은 세 번이나 사양했지만, 왕은 굳이 받게 했다.
사다함은 상으로 받은 가라 사람 300명을 모두 풀어 주어, 자유로운 백성(양인)이 되게 했다. 한 사람도 남겨 두지 않았다.
자유로운 백성이오.
받은 밭은 함께 싸운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송했다.
그 뒤, 무관랑이 병으로 앓아누웠다.
미안해.
무관랑이 세상을 떠나자, 사다함은 몹시 슬피 울었다.
그리고 이레 뒤, 사다함도 세상을 떠났다. 열일곱 살이었다.
받은 것을 모두 놓아준 소년은, 벗을 잃은 슬픔만은 끝내 놓지 못했다.
그로부터 마흔 해 가까이 흘렀다.
진흥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의 손자 진평왕이 신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600년, 바다 건너 수나라에서
스님 한 사람이 돌아왔다.
원광은 바다 건너 중국의 진나라와 수나라에서 오랫동안 불법을 배운 스님이었다.
600년, 원광은 수나라에 갔던 신라 사신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먼저 마음을 닦아야 하지 않겠나?
욕을 당하기 쉽지.
도를 들어 보세!
서라벌 사량부의 귀산은 어려서부터 같은 부의 추항과 벗이었다.
그 무렵 원광은 운문산 가슬갑사에 머물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원광을 찾아가, 옷자락을 걷어 잡고 나아가 아뢰었다.
아는 것이 없습니다.
평생 새길 가르침을,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열 가지로 나뉜다.
감당하기 어려울 게다.
다섯 가지 계가 있다.
충성으로 섬기고,
효도로 섬기고,
믿음으로 사귀고,
물러서지 않고,
가림이 있어야 한다.
너희는 이를 행하되,
소홀히 하지 말라!
若等 行之無忽 — 『삼국사기』 열전 귀산
‘살생유택’만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죽이지 않는다.
그것이 때를 가림이다.
죽이지 않는다.
그것이 물건을 가리는 것이며, 세속의 좋은 계라고 원광은 말했다.
감히 잃지 않겠습니다!
602년 가을 8월, 백제의 무왕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신라의 아막산성을 에워쌌다.
진평왕이 보낸 날랜 기병 수천에 밀려 물러난 백제는, 신라가 국경 가까이에 네 성을 새로 쌓자 다시 쳐들어왔다.
좌평 해수가 이끄는
보병과 기병 4만이었다.
아막성은 백제와 신라가 맞닿은 산줄기 위의 성이었다. 지금의 전북 남원 동쪽이다.
신라는 건품·무은 등 장군들에게 군사를 주어 막게 했다. 귀산과 추항도 소감(낮은 무관 벼슬)이 되어 함께 나섰다.
싸움에서 밀린 백제군은 천산 서쪽의 큰 못으로 물러나, 군사를 숨겨 두고 기다렸다.
쫓아가 싸우다 지친 신라군이 물러서던 그때, 맨 뒤를 지키던 무은에게 복병이 뛰쳐나와 갈고리로 그를 말에서 끌어내렸다.
물러서지 말라.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지 않는다고!
어찌 달아나겠는가!
어서 가십시오!
귀산은 제 말을 아버지에게 내주어 싸움터에서 빠져나가게 했다.
어디로 가겠나!
두 사람이 창의 한 가지인 과(戈)를 휘두르며 싸우는 것을 본 신라군이 떨쳐 일어나, 백제군을 크게 무찔렀다.
신라의 기록은 ‘말 한 필, 수레 한 대도 돌아가지 못했다’고 적었다.
온몸에 상처를 입은 귀산과 추항은, 돌아오는 길에 숨을 거두었다.
진평왕은 신하들과 함께 아나의 들까지 나와, 두 사람의 주검 앞에서 슬피 울었다.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고, 죽은 귀산에게 나마, 추항에게 대사의 벼슬을 내렸다.
감히 잃지 않겠습니다!
자유로운 백성이오.
어디로 가겠나!
어느 임신년 6월 16일, 신라의 두 젊은이는 돌에 맹세를 새겼다.
그 임신년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다함보다 앞선 552년일지도, 귀산과 추항보다 뒤인 612년일지도 모른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