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으로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400년 서쪽의 후연이 쳐들어와 고구려 사람 5천여 집을 끌고 갔지만, 광개토대왕은 요동성과 목저성을 지켜 내고 410년에는 동부여까지 엎드리게 했다. 요동성 앞에서 교만을 부리다 물러간 후연의 왕을 두고, 태왕은 어린 아들 거련에게 ‘왕이 교만하면, 그 값은 군사들이 치른다’고 일렀다(22화의 상상 장면). 412년 서른아홉의 태왕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이은 장수왕(거련)은, 414년 아버지의 무덤 곁에 거대한 비석을 세웠다.
등장인물
7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
북위에 쫓겨 고구려로 온다
상상 인물
‘동이 매금’이라 불렀다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다
427년, 고구려의 도읍 국내성. 왕이 된 지 열다섯 해째, 서른넷의 장수왕이 신하들 앞에 섰다.
평양으로 옮긴다.
버리시렵니까!
골짜기가 좁다.
강이 바다로 열려 있다.
뿌리 깊은 집안이 너무 많다.
도읍을 옮긴 까닭을, 『삼국사기』는 적어 두지 않았다.
떠나는 날 아침, 태왕의 비석이 선 들판에도 짐을 진 사람들이 지나갔다.
두고 가요?
새기는 손은 가져간다.
427년, 고구려는 오랜 도읍 국내성을 떠났다.
왕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삼국사기』는 이 일을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移都平壤)’는 한 줄로만 적었다.
대동강 가의 평양. 강은 서쪽 바다로 이어지고, 강가에는 너른 들이 펼쳐져 있었다.
새 도읍이다!
넓어요!
평양에 새 도읍을 짓는 일이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들판의 성에, 난리 때는 뒷산의 산성에 — 학자들은 이 무렵의 평양을 이렇게 본다.
집이 백 년을 간다.
볼래요!
그 무렵 북쪽 중국에서는 선비족의 나라 북위가 이웃 나라들을 하나씩 아우르고 있었다.
435년, 장수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자, 북위도 사신을 보내 장수왕에게 벼슬 이름을 내렸다.
북위가 거듭 쳐들어오자,
고구려 서쪽의 북연은 날로 위태로워졌다.
그해, 북연의 왕 풍홍이 보낸 사신이 몰래 평양에 왔다.
말씀이옵니다.
맞아 주시기를 청하셨습니다.
북위와 바로 맞닿는다.
436년 4월, 북위가 북연의 백랑성을 빼앗았다. 장수왕은 장수 갈로와 맹광에게 군사 수만을 주어 북연의 도읍 용성으로 보냈다.
벗어 던져라!
고구려 군사들은 북연 무기고의 좋은 무기를 꺼내 들고, 성안을 크게 약탈했다.
436년 5월, 풍홍은 용성의 백성을 이끌고 동쪽 고구려로 떠나며 궁궐에 불을 질렀다.
재만 남겨 주어라.
불은 열흘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부녀자들에게는 갑옷을 입혀 가운데에 두고, 양이의 날랜 군사가 바깥을, 갈로와 맹광의 기병이 뒤를 지켰다.
수레를 나란히 하고 나아간 행렬은, 앞뒤로 80여 리에 이르렀다.
북위의 황제는 사신 봉발을 고구려에 보내, 북연의 왕을 내놓으라 했다.
연왕을 북위로 보내시오!
황제의 교화를 받들겠소.
풍홍을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북위의 황제는 노하여 고구려를 치려 했으나, 신하들이 말려 그만두었다.
고구려 땅 요동에 닿은 풍홍에게, 장수왕은 사신을 보내 이렇게 위로했다.
군사와 말이 고단하시겠소.
감히 짐을!
‘용성왕 풍군’은 한 나라의 임금으로 행세하던 풍홍을 ‘용성 고을의 왕, 풍 공’쯤으로 낮춰 부른 말이었다.
평곽을 거쳐 북풍으로 옮겨진 풍홍은, 늘 고구려를 업신여겼다.
곧 법이다!
그는 제 나라에 있을 때처럼 벌을 주고 상을 내렸다.
장수왕은 풍홍의 시종들을 빼앗고, 그의 태자 왕인을 볼모로 데려갔다.
어디로 데려가느냐!
풍홍은 바다 건너 남쪽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자기를 맞아 가 달라고 청했다.
송은 사신 왕백구 등을 보내 풍홍을 맞아 오게 하고, 고구려에도 풍홍을 보내 달라고 했다.
장수왕은 풍홍이 남쪽으로 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 값은 군사들이 치른다.
북풍으로 보내라.
438년 봄, 손수와 고구는 북풍에서 풍홍과 그 자손 10여 명을 죽였다.
풍홍을 맞으러 온 송의 왕백구는 거느린 7천여 명으로 손수와 고구를 덮쳐, 고구를 죽이고 손수를 사로잡았다.
장수왕은 왕백구를 붙잡아 송으로 보냈다.
송의 황제는 먼 나라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왕백구를 옥에 가두었다가, 얼마 뒤 풀어 주었다.
450년 가을 7월, 동해 바닷가 실직(지금의 삼척)의 들. 고구려의 변방 장수가 사냥을 하고 있었다.
덮쳐라!
신라 하슬라(지금의 강릉) 성주 삼직이 군사를 내어 그를 덮쳐 죽였다.
소식을 들은 장수왕은 크게 노하여, 신라 왕에게 사신을 보내 따졌다.
과인은 대왕과 더없이 기쁘게 사이좋게 지냈거늘,
이제 군사를 내어 우리 변방 장수를 죽이니
이것이 무슨 도리요?
孤與大王 修好至歡也 今出兵殺我邊將 是何義耶 — 『삼국사기』 신라본기
과인의 허물이오.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서쪽 변경을 치자, 눌지 마립간은 몸을 낮춘 말로 사과했다. 고구려군은 돌아갔다.
실직은 지금의 삼척, 하슬라는 강릉이다. 남한강 가 충주에는 고구려의 비석이 남아 있다.
남한강 가, 지금의 충주. 고구려는 이곳에 돌비석 하나를 세웠다.
언제 세웠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이번엔 내 차례다.
옷을 내린다.
비석은 신라 왕을 ‘동이 매금’이라고도 불렀다. 동쪽 오랑캐의 왕이라는 뜻이다.
비문에 따르면, 고구려는 신라 매금과 그 신하들에게 옷을 내렸다.
468년, 고구려는 말갈 군사 1만을 앞세워 신라의 실직주성을 빼앗았다.
475년 9월, 여든둘의 장수왕은 몸소 3만 군사를 이끌고
백제의 도읍 한성을 빼앗았다.
484년, 북위의 도읍 평성. 북위 사람들은 고구려가 바야흐로 강하다고 여겨, 여러 나라 사신의 숙소에서 남제 사신 다음 자리에 고구려 사신을 두었다.
둘째 자리는 고구려의 사신이오.
강하다더니…
아들 조다를 먼저 보낸 장수왕은, 손자 나운을 궁궐에서 길러 태손으로 삼았다.
그러셨다.
그 값은 군사들이 치른다.
할아버님.
491년 겨울 12월, 장수왕이 세상을 떠났다. 아흔여덟 살이었다.
그에게는 ‘장수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위의 효문제는 소식을 듣고, 흰 관과 베옷을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 나가 슬퍼했다.
북위는 장수왕에게 높은 벼슬을 더하고, ‘강(康)’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열 살에 이 강가에 닿았던 석공의 아들도,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강이 바다만큼 넓어요!
바다만큼 넓구나.
손자 나운이 왕위를 이었다. 그가 문자명왕이다.
장수왕이 옮긴 도읍 평양은,
그 뒤 240여 년 동안 고구려의 도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