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장수 을불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고국천왕은 농사짓던 을파소를 국상으로 삼았고, 194년 흉년이 들자 봄에 나라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걷이가 끝나면 거두어들이는 법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백 년쯤 뒤, 고구려에 의심 많은 왕이 즉위했다.
등장인물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의심이 많다
을불을 머슴으로 부린다
을불과 소금 장사를 한다
을불의 소금을 탐낸다
왕에게 바른말을 한다
292년, 고구려의 새 왕 봉상왕은 작은아버지 안국군 달가를 죽였다. 공이 크고 백성이 우러러본다는 것이 까닭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293년 가을, 왕은 아우 돌고가 딴마음을 품었다며 죽음을 내렸다.
을불은 해를 입을까 두려워 들로 달아났다. 사람들은 죄 없이 죽은 돌고를 슬퍼했다.
을불은 수실촌 사람 음모의 머슴이 되었다.
대신 밥값은 곱절로 해라.
음모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잠을 못 자겠다!
못 울게 해라!
집 곁의 늪에서 개구리가 울면, 음모는 을불에게 밤에 기와 조각과 돌을 던져 울음을 그치게 했다.
개구리 소리가 그치면, 늪가에는 을불 혼자 남았다.
한 짐 더 해 와라!
낮에는 나무를 해 오게 하며, 잠시도 쉬지 못하게 했다.
고된 일을 견디다 못한 을불은, 한 해 만에 그 집을 떠났다.
그 뒤 을불은 동촌 사람 재모를 만나, 함께 소금 장사를 했다.
두 사람은 배에 소금을 싣고, 강을 따라 압록에 이르렀다.
바람은 밥일세.
을불은 강 동쪽 사수촌의 한 집에 묵었다. 그 집 노파가 소금을 청하자, 한 말쯤 덜어 주었다.
더는 못 드리오.
앙심을 품은 노파는 몰래 자기 신발 한 짝을 을불의 소금 자루 속에 넣었다.
노파는 소금을 지고 길을 떠난 을불을 쫓아와, 신발을 감췄다고 우겼다.
내 신발을 훔쳐 갔소!
노파는 을불을 고을 관리에게 고발했다.
이놈은 매를 쳐 내쫓아라!
압록재는 소금을 신발 값으로 빼앗아 노파에게 주고, 을불에게 매를 쳐서 내쫓았다.
얼굴은 바싹 마르고 옷은 누더기가 된 그를, 왕의 손자로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98년 가을, 서리와 우박이 곡식을 죽여 백성이 굶주렸다.
그런데도 봉상왕은 궁궐을 더 크고 화려하게 지었다.
그리고 사람을 풀어,
을불을 찾아 죽이게 했다.
본 자는 없느냐!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왕의 사람들은 끝내 을불을 찾지 못했다.
300년, 봄 2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큰 흉년이었다.
8월, 왕은 나라 안의 열다섯 살 이상 남녀를 모두 불러냈다.
궁궐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먹을 것도 없이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은, 하나둘 고향을 버리고 떠돌았다.
해 지기 전에 기둥을 세워야 한다!
하늘의 재앙이 잇따르자, 국상 창조리가 왕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백성의 부모 된 뜻이 아닙니다.
임금의 위엄이 서지 않소!
신하가 간하지 않음은 충성이 아닙니다.
죽고 싶은 게요?
창조리는 신하들과 함께 왕을 폐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먼저 북부의 조불과 동부의 소우를 보내, 산과 들을 뒤져 을불을 찾게 했다.
비류하 가에 이르렀을 때, 배 위의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
몹시 여위었지만, 몸가짐이 예사롭지 않았다.
신하들이 몰래 폐하려 합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왕손이 아니오.
신하들이 왕손을 기다립니다.
의심하지 마소서.
을불은 마침내 그들을 따라나섰다. 창조리는 기뻐하며, 아무도 모르게 그를 숨겨 두었다.
300년 가을 9월, 봉상왕이 후산 북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국상 창조리도 왕을 따랐다.
나를 따라 하시오.
창조리는 갈댓잎 하나를 꺾어, 자기 관에 꽂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갈댓잎을 꽂았다. 모두의 마음이 같았다.
창조리는 모두의 마음이 같음을 알고, 마침내 왕을 폐했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왕은 별실에 갇혔고, 군사들이 그 둘레를 지켰다.
갇힌 봉상왕은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아들도 함께 죽었다.
신하들은 왕손 을불을 맞아들여 옥새를 바쳤다.
고구려의 열다섯 번째 왕, 미천왕이 즉위했다.
개구리 우는 늪에 돌을 던지고, 소금 자루를 지던 손이 이제 옥새를 쥐었다.
왕이 된 을불은 고구려를 둘러싼 중국 군현들을 차례로 쳤다. 302년에는 현도군을 쳐서 8천 명을 사로잡았다.
311년, 고구려군은 압록강 어귀의 서안평을 빼앗았다.
고구려의 길이다.
서안평은 요동에서 낙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313년 겨울 10월, 미천왕은 낙랑군을 쳤다.
고구려군은 낙랑의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무너진 자리에 한나라가 세운 낙랑군.
그로부터 420여 년.
낙랑군은 마침내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이듬해인 314년, 고구려는 남쪽의 대방군도 쳤다.
쫓을까요?
울게 두어라.
왕은 오래도록,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331년 봄 2월, 미천왕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왕을 미천의 들(미천원)에 묻고, ‘미천왕’이라 불렀다.
296년, 서쪽 선비족의 모용외가 쳐들어와 왕의 할아버지 서천왕의 무덤을 파헤치려 한 일이 있었다.
무덤 속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그들은 겁을 먹고 물러갔다고 한다.
왕이 세상을 떠나고 11년 뒤,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이 세운 전연의 대군이 고구려로 쳐들어온다.
342년 겨울,
미천왕의 무덤이 파헤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