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은 나라들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서기 42년 구지봉. 사람들이 ‘거북아 거북아’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금합이 내려왔고, 그 속 여섯 알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중 김수로가 가야를 세웠고, 바다를 건너온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다. 가야는 철의 나라로 자라났다.
등장인물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열 살에 집을 떠난다
아는 집안 어른
공물을 져 나른다
박달나무 활을 멘다
거두는 고구려 귀족
한반도 북쪽, 높은 개마대산 너머 동해 바닷가에
큰 임금 없이 마을마다 우두머리가 다스리는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
옥저와 동예.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56년 고구려 태조왕이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
옥저.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기름진 땅에서, 사람들은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얻었다.
옥저에는 소와 말이 드물었다. 말발굽 소리가 나면, 고구려 사람들이 온 것이었다.
작은 나라 옥저는 고구려에 매여 있었다. 고구려는 옥저의 우두머리를 ‘사자’로 삼고, 대가를 보내 세금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등에 지고, 천 리 길을 걸어 고구려까지 날랐다.
옥저에는 이런 풍습이 있었다.
딸이 열 살쯤 되면, 훗날 며느리로 삼기로 약속한 집에서 데려가 길렀다. 다 자라면 다시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그해 가을,
열 살 갈매가 집을 떠나는 날이 왔다.
나 가기 싫어.
보고 싶으면, 이걸 봐.
갈매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건넛마을까지는 반나절 길. 하지만 열 살 아이에게는 바다 건너만큼 먼 길이었다.
그 집에서 갈매는 물을 긷고, 생선을 말리고, 곡식을 찧었다.
해 지기 전에 끝내라.
그해 겨울밤, 할머니는 너울에게 바다 저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람에 떠밀려,
수십 날을 흘러갔더란다.
옥저 노인들이 전하던 바다 저편 이야기는, 훗날 『삼국지』에도 실렸다.
그 겨울이 다 가기 전,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옥저 사람들은 죽은 이를 먼저 흙으로 살짝 덮어, 임시로 묻어 두었다.
살이 다 썩어 없어지면, 뼈를 거두어 집안의 큰 나무 곽(덧널)에 모셨다.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할머니를 곽으로 모실 날이 왔다.
옥저에서는 죽은 사람 수만큼, 나무를 깎아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새겼다.
늘 짚으시던 거.
온 집안이 함께 쓰는 커다란 나무 곽. 길이가 10여 장이나 되고, 한쪽 끝에 문을 냈다.
곽 안에는 먼저 떠난 조상들의 나무 모습이 나란히 서 있었다.
질솥에 쌀을 담아, 곽의 문 곁에 매달았다.
세 해가 흘렀다. 너울은 열다섯 살이 되었다.
그해 가을, 너울은 아버지를 따라
소금을 지고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또 하나의 작은 나라 동예가 있었다.
동예에는 키가 작아, 타고서 과일나무 밑으로도 지나갈 수 있는 말이 났다. ‘과하마’였다.
동예 사람들은 삼베를 짜고, 누에를 쳐서 솜을 얻었다.
그 내는 건너면 안 돼!
동예에서는 산과 내마다 마을의 몫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넘나들 수 없었다.
마을끼리 경계를 넘으면 노비나 소, 말로 갚게 했다. 이것을 ‘책화’라 했다.
제 말을 드릴게요.
시월이 되자, 동예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잔치,
‘무천(舞天)’이었다.
동예 사람들은 새벽에 별자리를 살펴, 한 해 농사가 풍년일지 흉년일지 미리 점쳤다.
너울은 박달과 헤어져 옥저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여러 해가 흘렀다.
어느 봄날, 바닷가 길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갈매의 손에는, 닳고 닳은 나무 갈매기가 들려 있었다.
다 자란 딸이 돌아오면, 친정은 그 집에 돈을 요구했다. 돈을 다 치르면 딸은 다시 그 집으로 갔다.
돈은 여기 있소.
바다는 오늘도 소금을 내주었고, 사람들은 오늘도 그것을 지고 고개를 넘었다.
3세기 중엽, 위나라 군대가 고구려 왕을 쫓아 이 바닷가까지 와서 옥저의 마을들을 깨뜨렸다.
그때 동쪽 큰 바다까지 온 이들이 여러 나라를 두루 살피고 그 풍속을 적었다고, 『삼국지』는 전한다.
옥저와 동예는 끝내 고구려에 들어갔다.
바닷가 사람들의 살림은,
그렇게 기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