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검성의 마지막 해
장면마다 바람·모닥불·강물 소리가 바뀌고, 이야기 흐름을 따라 음악도 달라져요.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뒤, 고조선은 쇠로 강해졌고 한나라와 이웃 나라들 사이에서 물건을 이어 주며 부유해졌다. 위만의 손자 우거왕 때, 빈손으로 돌아가던 한나라 사신 섭하가 배웅 나온 고조선의 비왕 장을 죽이고 달아났다. 전쟁의 불씨가 떨어진 것이다.
등장인물
왕검성 대장간의 딸
화살촉을 두드리는 대장장이
위만의 손자
화친하러 패수로 간다
끝까지 성을 지킨다
바다와 땅으로 온다
여울나는 여울. 증조할아버지 바우 때부터 우리 집안은 쇠를 다뤄 왔다.
성벽 한 뼘이다.
고조선 군사가 섭하를 쳐 죽인 뒤로, 왕검성의 대장간마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 무제는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 모아 대군을 꾸려, 두 길로 보냈다.
우거왕도 군사를 보내 험한 길목을 막았다. 그런데 바다로 온 양복의 수군 7천 명이 먼저 왕검성에 닿았다.
나가서 쳐라!
양복의 군대는 무너져 뿔뿔이 흩어졌다.
양복은 산속에 열흘 넘게 숨어 지내다가, 흩어진 군사를 겨우 다시 모았다.
땅으로 온 순체의 군대도, 패수에서 끝내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첫 싸움은 고조선의 승리였다.
싸움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한 무제는 사신 위산을 보내 우거왕을 달랬다.
두려웠을 뿐이오.
따르겠소.
우거왕은 태자를 보내 사죄하고, 말 5천 필과 군량을 바치기로 했다.
태자는 말 5천 필과, 무기를 든 무리 만여 명을 이끌고 패수에 이르렀다.
어찌 무기를 들었소?
건너오시오!
우리를 죽이려는 걸까…
변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서로를 믿지 못한 두 무리는, 끝내 강을 건너지 못했다.
화친은 그렇게 깨졌다.
한 무제는 일을 그르친 사신 위산을 처형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순체는 끝내 패수를 건너와 성의 서북쪽을, 양복은 남쪽을 에워쌌다.
다 적이에요?
세다 보면 무서워진다.
밀어내라!
몇 달이 지나도록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안의 곡식 창고는 하나둘 비어 갔다.
고조선 대신 몇몇이 몰래 양복에게 항복할 뜻을 전했다. 그러자 순체는 양복을 의심했다.
우리를 칠 것이오!
붙잡아라!
순체가 두 군대를 모두 거느리고 몰아치자, 성 안의 대신들은 몰래 머리를 맞댔다.
그가 붙잡혔소.
임금께서는 항복하려 하지 않으시니…
상 노인(路人)과 상 한음, 장군 왕겹은 몰래 성을 빠져나가 한나라에 항복했다.
상 노인은 가는 길에 죽었다.
기원전 108년 여름.
그날 밤, 궁궐은 고요했다.
니계상 참이 보낸 사람들이 우거왕을 죽였다. 그리고 참은 한나라에 항복했다.
왕이 죽었다.
그러나 왕검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조선은 아직 여기 있다!
여울아버지도 망치를 치켜들었다. 나도 따라 소리쳤다.
순체는 항복한 우거왕의 아들 장과 상 노인의 아들 최를 보내, 성안 백성들을 타이르게 했다.
모두 살려 주겠다!
성문을 열어라!
성기를 쓰러뜨린 것은 한나라 군사가 아니었다. 같은 성 안의 사람들이었다.
성벽 한 뼘이다…
여울나는 그날, 아버지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성문이 열렸다. 한나라 군사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놓치지 마라.
망치다.
여울며칠 뒤 새벽, 우리 가족은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왕검성이, 고조선이, 그렇게 멀어져 갔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무너졌다.
한나라는 그 땅에 낙랑군을 비롯한 군현을 두었다.
여울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나는 증조할아버지의 망치를 품에 꼭 안았다.
필요할 게다.
여울남쪽 바닷가 마을에서, 증조할아버지의 망치는 다시 불꽃을 튀겼다.
낫을 만들자.
고조선은 무너졌다.
그러나 고조선 사람들이 쌓아 온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쪽의 넓은 들판에서도,
새로운 나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